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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기주의 ‘수표 현금화 수수료’

당국 ‘규제철폐’ 시도에도 수년째 제자리…ATM 입금에도 구태의연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2.07 08: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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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문: 설 연휴를 앞두고 A은행 **지점을 찾은 갑씨. 그는 을씨로부터 거래대금조로 받은 자기앞수표들을 자기 계좌에 집어넣는 즉시 거래처 몇 곳에 온라인 송금을 하는 한편, 일부는 현금을 찾아 설 연휴에 새뱃돈과 부모님 용돈으로 지출하려고 한다. 을씨가 건넨 수표들이 B은행 발행 자기앞수표라고 하면, 갑씨가 개인비용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얼마나 될까?

답: 몇 장의 수표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표 매수당 ‘장당 1000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자기앞수표는 현금과 다름없이 통용되고 있지만, 타은행수표 현금화 등에서 시중은행들은 상당히 경직된 태도로 수수료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수표는 은행 계좌를 가진 고객에 대해 지급을 하겠다는 약속의 증표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제통용력이 있는 국가 발행의 화폐와는 성격이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화폐는 은행권과도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다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국 중앙은행이나 식민지 등 특수한 곳에서는 가장 공신력 있는 은행에 은행권 발행 권한을 주고 이를 바로 화폐로 인정하는 추세다. 우리의 한국은행권이나 홍콩에서 HSBC은행권이 갖는 지위를 생각해 보라). 때문에 특정 은행에서 발급된 수표를 다른 은행에서 사용한다는 것에는 일정한 제한이 따르게 된다.

타행수표를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일을 실무상 ‘현금화’라 한다.

2004년 7월, 한국은행은 수표의 유통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은행들이 창구에서 즉시 현금화를 해 주도록 했다. 즉, 이전에는 수표를 입금하면서 익일(다음날) 오후가 되어서나 수표 액면가에 해당하는 현금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던 관행을 고쳐, 즉시 현금으로 입급해 주거나 현금으로 교환해 교부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은행간 정액권 자기앞수표의 교환결제에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보교환 시스템이 구축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실무상으로는 즉시 현금화가 잘 이용되지 않았다.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시중은행들이 고집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다른 은행의 수표를 입수하게 되면 이를 서로 교환 및 정리하게 되는데, 현금화를 하는 일, 즉 자기 은행의 현금 보유고에서 다른 은행의 수표에 대응하는 현금을 내주는 일(현찰이 되었든 언제든 인출이 가능한 요구불 예금으로 넣어주든 간에)은 일정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현금지급(현금화)이 ‘정보 교환에 의한 교환결제’의 전에 이루어지게 되면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은행을 대신해 수표대금을 먼저 지급한 은행(수납은행)은 다음 영업일 차액결제 시점까지 ‘신용 리스크’를 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자금부담’도 안게 된다. 또한 창구에서 자기앞수표의 조회에 나서는 직원의 인건비 소모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논리가 현금화 수수료의 부과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창구 업무 비용받겠다’ 주장에 ‘즉시 현금화’개선 반쪽짜리 전락 

하지만, 실제로 자기앞수표는 현금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를 잠시간 떠안는 데 대해 리스크니 자금 부담이니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남은 유일한 문제가 창구 업무의 인건비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시중은행들은 시스템 구축을 통해, 다른 은행에서 발행된 정액권 자기앞수표를 모든 은행 지점에서 즉시 현금으로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이 제도를 개선하면서 한국은행이 미처 매듭짓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러한 수표 즉시 현금 교부를 일종의 ‘창구 업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부과할지는 은행들이 정할 여지를 둔 것이다.

◆수표처리 관련 시스템 개편 비용, 현금화 업무에 얹어 부담?

실제로, 대부분 은행은 이 제도 개편 이후에도 서비스에 필요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수수료를 고객이 부담하는 것으로(2004년 8월3일 ‘뉴시스’ 보도) 했고, 실제로도 이 같은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 들여다 볼 대목이 있다. 한국은행과 시중은행들의 수수료 인정에 대한 수수료 부과 논의는 당초 서비스 비용으로 본다는 데 주요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애초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보면 이 수수료에 대해서, 창구 업무에 따른 수수료에 또다른 항목인 시스템 구축의 비용이 얹히는 쪽으로 방점이 이동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이 즉시 현금화에 대한 발표에서 우리은행이 빠진 내막을 보면, 이같은 현금화 정책 개선과 관련한 시중은행들의 입장이 단순한 창구 업무 비용, 즉 인건비 문제가 아니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당시, 우리은행은 새로운 전산시스템 구축을 이유로 이 발표 다음해 이후에나 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당시 우리은행 지점에서는 즉시 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우리은행이 발행한 자기앞수표 역시 타행에서 즉시 현금화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시중은행들이 당시 명분으로 내건 ‘현금화에 대한 비용’이란 결국 일정한 시스템 비용(전산망 구축과 가동의 초기 비용)을 당시 은행권이 고객에게 전가한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왜냐 하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원래 수표 현금화에 대한 수수료를 수표 장당 1000원으로 이미 매기기 시작한 것이 2001년이다(2001년 11월6일 ‘머니투데이’는 하나은행이 ‘자기앞수표 교환결제전 자금화수수료 신설’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빛은행은 교환결제전자금화 수수료 명목을 신설한다는 보도가 2001년 9월11일 나왔다.).

이후 당국이 제도 개선을 시중은행들에 강요하고 그에 대응해 시중은행들이 순전히 인건비에 소모된 창구거래에 따른 수수료로서 수표 현금화에 대한 수수료를 여전히 주장한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은행은 자체적인 문제로 인해 어떤 시스템 구축이 안 되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한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대세 변동에 동참했어야 이치상 맞다.

그런데 실상은 수표 즉시 현금화라는 일종의 ‘규제철폐’ 추진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은 이상과 같은 시스템 개편의 속도 차이에 따라 자기 은행 고객들에게 혜택을 줄지 말지를 저울질했다는 것이 된다. 

이는 이 무렵에 수표의 교환에 있어 ‘각 지역별’로 이뤄지던 것이 ‘전국’이 한 단위로 묶이는 개편이 2010년 11월에야 비로소 이뤄지는 것으로 변경된다는 점(이때에 이르러 수표의 교환제도가 금융회사들이 어음과 수표를 어음교환소에서 실물로 주고받아 결제하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해당 증서의 이미지파일이나 텍스트 전송만으로 가능하게 됐음) 등 수표 업무와 관련된 상황이 계속 진화하고 있었다는 점을 겹쳐보면 추론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같은 개편 과정에서 외환은행은 2002년 4월16일 수표 현금화에 대한 수수료를 이미 지역과 상관없이 인하해 받기로 발표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보면 수표 현금화에 따른 비용 부담의 주요 부분을 인건비에서 찾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인프라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에 따른 것을 서비스 비용으로 두루뭉술하게 포함한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따라서 일정한 인프라가 구축 직후에는 비용을 물게 하더라도, 이후 그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게 옳다는 논의가 다른 영역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이미 운영을 통해 건설투입비용 이상의 수익을 올린 주요 고속도로에 대한 통행료 무상화 추진에 대한 주장이 정치권 등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대전시 인근 고속도로의 무상화 주장을 2008년 4월22일 대전일보사가 낸 바 있다), 시중은행들이 몇 년째 똑같은 수표 즉시 현금화 수수료는 장당 1000원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데에는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명 창구 업무 비용, 생각만큼 크지 않다

더욱이 창구 업무에 소요되는 비용이란 것이 실제로 시중은행들이 포기 못 할 만큼 크지 않으므로, 시중은행들이 지게 되는 수표의 즉시 현금화에 소요되는 인건비 부담이란 해석 자체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시중은행들은 영업 경쟁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 수수료를 할인 내지 철폐해 주는 방향으로 영업을 해 왔는데, 일례로 2005년 6월의 경우 외환은행이 자기앞수표 추심 수수료를, 국민은행은 10만원 이상 금액을 ATM을 통해 송금하는 고객에 대한 수수료 할인에 나서는 등 ‘영업전쟁’을 벌이고 있다.

은행들이 창구에 송금이나, 수표 현금화 등의 업무를 처리하러 오는 고객들에게 고액의 수수료를 물리는 것은 ATM을 통한 단순 업무 고객 거래를 유도하고 이 시간에 다른 업무(예컨대 PB 업무 등 높은 수익발생에 필요한 행원 인적자원의 활용)를 보기 위한 ‘기회비용’ 문제이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영업전쟁에서는 이런 부분부터 포기해 ‘유인’의 효과를 보려 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결국 현재 시중은행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비용을 물려 창구에서의 즉시 현금화 수요를 사실상 현저히 줄이고 있는 것은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ATM 통한 타행수표 즉시 현금화 추진이 관건

그렇다고 하면, 시중은행들은 왜 행원의 창구 업무에 추진되는 비용이 없는 ATM을 통한 타행 수표 입금에 대해서는 즉시 현금화를 하지 않는가?

ATM 역시 전산망에 연결돼 있으므로, 타행수표의 조회를 하고, 이후 고객이 ‘현금화 후 입금’ 내지 ‘(현재 ATM에서 입금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대로) 입금 후 영업일 익일 후 현금화’를 택하게 하면 현재 시중은행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나, 이처럼 일반이 갖게 되는 이기주의 논란의 비판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산의 기술상 문제라기보다도 시중은행들이 수수료에 수익을 기대고 있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은행연합회는 수수료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낸 바 있는데(예컨대 2005년 6월17일 발간 보고서), “금융시장의 경쟁격화로 은행들의 수익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은행들은 고객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종 수수료를 신설하거나 기존의 수수료를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 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주장이다. 2004년 우리은행 이덕훈 당시 행장은 연초 시무식에서 “수수료수익 비중을 장기적으로 40%까지 늘려 안정적 수익 기반으로 삼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수표 둘러싼 이중적 태도 벗어나야 지적도

결국 어떤 제도를 당국이 진행한다고 해도, 수수료를 수익 그 자체로 보고 이런 수익을 자신들이 영업전쟁의 한 수단으로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시중은행들의 시각 자체가 개선되지 않는 한, 수표를 둘러싼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타행수표 처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시중은행들은 자행에서 발행한 수표의 현금화에는 현행법령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지중적 자체를 보이기도 한다.

즉, 수표법에서 예정한 수표의 유통기한은 10일인데(수표의 ‘제시기간’은 발행일로부터 10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은행에서는 이러한 기한의 문제 없이 현금처리를 해 주고 일부에서는 아예 발행일을 명확히 표시하지 않고 고객에 교부하는 방식 등 사문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자기앞수표란 은행과 고객간의 계좌 잔고 범위 내의 발행인만큼 현금이나 전혀 진배없다는 것을 시중은행들이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고 이를 거스르는 게 은행의 영업에 전혀 도움이 안 됨을 잘 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는 타행수표의 즉시 현금화에 대한 수수료 관행은 의미가 없거나, 이미 오래 전 의미를 잃고 관행적으로 남아 있는 과도한 부담 소지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규제철폐 차원에서라도 폐지를 추진하는 것을 검토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