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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靑과 정용진의 가벼움, 그이면을 우려함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2.03 13: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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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예전에는 허언필망(虛言必亡)이라 해 가벼운 말을 경계했는데, 세상엔 가벼운 말만 넘친다. 특히 갑남을녀들이 가담항설로만 이를 입에 담는 게 아니라, 요직에 앉은 정치인과 재계 주요인사들마저 가벼운 말을 하려는 유혹, 말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에 점점 경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 들어 한 신년간담회에서 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관련 발언이 구설수에 휘말렸다. 이 대통령은 충청권으로 이를 보낼 것이라는 당초 아이디어를 접고 '백지화 후 재검토' 방침을 내걸었다. 이에 충청권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정치권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대통령의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은 2007년 12월 대선 공약집에 분명히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에서도 그 입지적 타당성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이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은 충청권에서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애써 축소 발언을 한 것과 관련, 강하게 비판했다. 안 지사는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이었기 때문에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라면 2007년 대선도 없던 일로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스스로의 약속을, 그것도 공약이라고 내건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엄청난 신뢰의 붕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신세계그룹도 연초 오너 일가의 경솔한 발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달 하순, 트위터에 자사 계열사나 협력업체에 신분을 숨긴 채 취업해 직원들과 똑같이 일을 해보는 이른바 '언더커버 보스' 체험을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언더커버란 원래 수사 용어다. 마약 조직 등에 경찰관을 위장으로 들여보내거나(영화 '무간도'를 생각해 보라), 수사 편의상 아예 위장용 기업을 차려놓는 일을 말했다. 이를 흉내내어,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자기 회사에 위장 취업해 직원의 고충이나 사업의 개선점 등을 배우는 내용을 컨셉트로 한 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 경향신문에 "국내 재벌 2, 3세 기업인 중 젊고 체력 좋은 정 부회장이 언더커버 보스 체험 1순위 아니겠느냐"는 내용의 칼럼이 게재됐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정 부회장이 "(우리 기업의 문제나 직원의 고충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보겠다"고 트위터에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그룹 내에 모르는 이가 없는 정 부회장이 어떤 업무를 체험할지,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감출지 관심이 쏠리면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쯤 되고 보면, 오너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이 꽉찬 자기 기업이나 협력업체에서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 보겠음'이라는 건지, 본 기자는 알 수가 없다.

아마 트위터글에서 "언더커버 보스의 드라마틱한 스토리까지는 모르겠지만" 부분에 방점을 찍게 되면, 연두에 기업 총수들이나 정치인들이 많이들 하는 일선 지사 방문이나 최전방 군부대 위문과 같은 일회성 행사(사직찍기용 행사)에 머물 공산이 클 것이다. 반면 "만들어 보겠다"의 의욕 부분에 중점을 둬 (드라마틱은 아니어도) 실제로 뭔가 현장의 상황을 느낄 만한 리얼리티를 살려보려면 저 많은 눈과 귀를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과문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본 기자가 알기로는 (자연인 정용진이 아닌 것으로 보이게끔) 위장 취업은 그렇다 치고, 위장 아르바이트만 하려고 해도 상당한 눈속임이 필요하다. 일단 신원 등을 알 수 없게끔 하려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 행세를 해야 할 것이다. 하다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당을 타려 해도 이름과 주민증 등 신분 입증이 필요하다(아직도 드나드는 인원이 너무 많아 장부 조작 여지가 없지 않다는 토건기업들의 공사 현장 수준으로 신세계그룹의 일선 말단 판매조직들이 돌아간다면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결론적으로는 타인 행세를 해야 하고, 그건 개정 주민등록법에 저촉된다는 점을 의식하는 발언이 될 것이다. 2005년 입법예고된 후 실제 집행되고 있는 주민등록법은 재산상 이익을 노린 경우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활용, 행세를 하면 무조건 처벌을 하도록 돼 있다. 논란이 많았으나, 2007년9월 대법원에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그 소지자의 허락 없이 함부로 이용했다 하더라도 그 주민등록번호를 본인 여부의 확인 또는 개인식별 내지 특정의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 이른 경우가 아닌 한, 주민등록번호 부정사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 (월급 명세서나 장부 등을 기재하는 회사 직원이  다른 직원의 번호를 적지 말아야 할 명부에 임의로 적어넣는 경우 등을 빼고, 웬만한 번호 사용 행위(개인식별, 인물 특정 등)에 대해서는 처벌 의사를 해석론상 분명히 했다.

그저 언론인에 대한 인사치레로 여길 수도 있는 대목이나, 정 부회장은 그렇잖아도 트위터 설화를 여러 번 겪은 인물이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이 후지다는 요지의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고, 중소기업 사장과 밤새 논쟁을 벌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일도 있는 그가 이런 말을 적을 때엔 그저 경솔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평소 법규정에 대한 생각이 저러하다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공약을 뒤집은 일이나, 그룹 오너가 유행하는 최첨단 의사소통수단을 활용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비난이 비등해도 어떤 정책을 집행하거나 중단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현장의 고충을 기업 최고위층이 몸소 겪어 봐야겠다고 느끼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표를 얻으려 한 말이니 뒤집어도 된다는 뉘앙스를 풍기거나 혹은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받아들여 서운해할 만한 언사를 하거나, 이건 그냥 겉치레로 가볍게 '언제 한 번'이라 했거나 반대로 타인 행세를 감쪽같이 해서라도 한 번 샅샅이 점검해 봐야겠다고 해석될 말을 '툭~' 그야말로 '투욱~' 던져서는 곤란하다.

그건 여염집의 가장이나 저잣거리의 좌판 상인이라 해도 안 될 일이라고 사료된다. 상인에겐 원래 조국도 없다고들 하지만, 말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신의가 있어야 이윤이 붙을 큰 기회가 주어진다. 국가 지도자라면 하물며 말해 무엇 하랴. 나는 정치적 대의가 없다거나, 세부적인 법령 등은 잘 모르거나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보일 언동은 은연 중에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 설을 앞두고 나온 두 건의 가벼운 말이 주는 부담과 우려가 너무도 무겁다. 설연휴 이후엔 진중한 말들이 넘쳐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