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김승유와 곰의 임신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1.30 11:25:13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플리니우스는 곰이 겨울에 교미를 해 새끼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임신 기간이 30일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믿음은 극히 오랫동안 과학자들 사이에 내려왔다(1890년대까지도 이같은 믿음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 실상 곰은 겨울이 아닌 4월~8월 무렵에 짝짓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인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착상지체 현상이라고 불리는 곰의 임신 과정의 특수성에 있다. 1882년 동물학자 헤르브스트는 교미 후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하기까지 상당기간이 걸릴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실제로 임신이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형성하고 이것이 자궁벽에 착상, 모체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으며 성장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성교 후 수정란이 발생한다면, 3,4일이면 착상까지가 끝나는데, 곰은 이 착상까지의 기간이 길다는 가설이었다(실제로 곰은 수정란 착상까지가 5개월도 걸릴 수 있다. 과학적으로 이것이 최종 입증된 것은 1963년이었다).

이렇게 임신에 있어 착상지체를 곰이 택해 진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곰은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 가면(설핏 잠이 든 상태)에 빠지는 일명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즉 착상지체를 통해 실제로 새끼를 낳을지 불확실한 시기에 곰은가을을 맞는다. 가을까지 풍족히 먹이를먹어 지방을 축적해 겨울나기와 임신, 출산을 견딜 수 있으면 비로소 착상을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가혹한 가을과 이후 겨울이 예상되면, 곰은 수정란을 착상시키지 않고 이를 흡수한다고 한다.

흡수란,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몸 안에 들어온 이종 단백질이 분해, 내벽에서 영양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인간이 기생충약을 먹은 경우, 죽은 기생충이 체내에서 분해, 흡수되고 마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일요일 아침부터 곰의 착상지체와 긴 임신과 출산까지의 특이하게 긴 기간을 논하는 것은 근래 우리 나라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자연 생태계에서 보이는 현상과 비슷한 일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은 단자사에서 출발하여, 은행업으로 전환, 시중은행으로 변신한 이후(하나은행)에 보람과 서울, 충청은행 등 여러 은행들을 흡수해 오면서 성장했다. 근자에는 1967년 특수은행으로 문을 연 외환은행을 M&A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으며, 증권과 보험 등 여러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외환은행이 극렬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치고(외국환전문은행에서 출발한 전통의 은행이 단자사에서 시작한 일천한 역사의 은행의 사냥감이 되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감안, 추측해 보자) 이 와중에 그간 간신히 봉합되어 온 출신은행별 융합 실패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왜일까?

특히 충청 하나은행 일명 충사본이라고 약칭되는 조직에 속한 하나은행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통합 보너스를 받아도 기쁘지 않다고 하는 데에도 일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하나은행의 행원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해야한다고 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점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불만이 팽배한 은행이라면, 새로운 외환은행을 받아들이는 데 제대로 된 통합 마무리를 할 여력이 없는 게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하나금융측에서 상당 기간 1지주 2은행제를 하겠다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그게 최선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달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보람과 충청, 서울은행 등을 합병한 게 벌써 언제인데, 아직도 조직원 중에 "우리가 하나은행의 행원인 건 맞는지 궁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통합 운동이 거세고 노조가 이슈화해달라는 절규가 끊이지 않는가? 보너스를 받아도 아니꼽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면 경영진에 대한 반발이 보통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와중에 자사고인 하나고에 투자하고, 외환은행을 먹겠다고 나서는 걸 '조강지처는 구박하고 나가서는 여자들에게 팁을 뿌리는' 행보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난봉꾼에 비유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는 심한 표현이라고 본다.
   
 
   
 
하지만, 곰이 착상지체를 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점은 이야기하고 싶다. 이미 오래 전 흡수된, 그래서 조직에 받아들여져 자식으로 키워져야 할 많은 피인수은행의 행원들이 여전히 하나은행의 행원으로 자존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곰이 겨우내 내가 새끼를 임신해 낳고 무사히 봄을 맞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은 이같은 많은 은행 인수 작업에 가장 책임이 있는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을 사령탑에서 보낸 인물이다. 김 회장이 생각하는 '좋은 봄날'이 가깝지 않으면, 비축된 양분이 충분치 않으면, 이들 피인수은행원들에 대한 처우는 지금처럼 착상을 지체하는 상황으로 유지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 겨울을 넘길 자신은 언제 김 회장과 하나금융 경영진들에게 깃들일까? '미련곰팅이'라고 흔히 불리는 곰은 살아 남기 위해 그런 시스템을 택했는데, 김 회장도 하나은행, 더 나아가 하나금융이 100년 기업으로 남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런 결단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단지 은행계의 역사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 냉정한 선택을 했다고, 미련곰팅이만도 못한 위인이라고 단언하지는 말자. 다만, 빨리 좋은 봄날이 을지로 하나금융에 찾아올 것이란 확신이 어서 생겼으면 한다.

하다못해 임신하고 애낳고, 가정을 단란하게 꾸리기도 힘들다는 하나은행원의 불만이 그저 투정이 되는 시절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곰의 임신처럼 한 금융그룹의 M&A가 슬프고 안타까워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