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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진 조중훈-조중건의 ‘협잡’이 그립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1.28 13: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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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한항공을 비롯, 물류에 강점을 가진 기업들을 거느린 한진그룹은 오늘날 다국적기업(초국적기업)으로까지 평가받고 있지만, 출발은 심히 미약했다.

그런 한미한 한진이 해운과 항공에서 두각을 보인 것은 순전히 일명 ‘조 브라더스(고 조중훈-중건 형제)’의 수완과 뚝심, 그리고 근면함 때문이라고 평하는 데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

   
고 조중훈 회장과 조중건 부회장은 최고의 파트너로 한진家 뼈대를 쌓아 올린 인물이다(좌측 부터)
고 조중훈씨가 일찍이 한국 기업인들과 베트남을 방문했는데, 배들이 정체를 이루는 항만 실정을 보고 ‘(하역이나 수송에서 미군이 가려운 데를 긁어주면) 돈이 되겠다’는 점을 깨닫고 다른 기업인들이 그걸 보지 못하게 딴전을 피웠다는 ‘기지’는 지금도 회자된다.

그러나 한진이 크게 돈을 벌어 글로벌 기업 초석을 놓은 베트남 사업 시절의 백미는 중건씨의 M-16 담판(조중건 전 부회장과 미국 찰스 마이어 사령관)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미 한국에서도 미군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들이 끈끈한(?) 인맥을 동원해 펼치는 공세와 그 성과는 유명세를 날린 바 있었다. 

1996년 나온 ‘내가 걸어온 길’에서도 중훈씨 스스로 ‘배짱과 허세로 사업을 키웠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미군정 물품운송 계약을 따내기 위해 벤츠를 타고 상담을 벌이고 미군 장교들에게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는 등 구워삶기가 이미 이 시기부터 보통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베트콩이 미군 물자를 나르는 한진의 수송 트럭단을 습격해 피해가 난다며 억지를 써 M-16 소총들을 타내 무장한 점은 보통 말하는 사업적 수완(?)의 범주를 넘는다고 본다. 아직 한국군이 2차 대전 때 쓰던 M-1과 그 아류인 M-1카빈을 쓰던 시기에 일개 민간기업 고용인들에게 정식 미군의 무기자원을 들려놓겠다는 구상 자체가 상상초월이다.

어쨌든 “먼저 쏘는 건 안 된다”는 미군 고위관계자의 신신당부를 받으며 하사받은 무기들로 운전사들을 무장시켜 정글도로를 달려가며 달러를 벌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한진 근로자들의 ‘월남살이’가 부드럽고 즐거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단 전쟁터인 데다, 현지 복리후생 등에서도 불만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채소를 길러 조달해 먹이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와 두둑한 배짱과 협잡으로 미군 무기로 무장까지 시켜주는 오너 일가가 있어 근로자들이 칠성판을 등에 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할 발판만큼은 탄탄했다고 해석된다.

무엇보다, 무리하게 민간인 무장을 시킨 점은 잘못이고 이걸로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겠으나, 행여 일이 잘못되어도 우리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지 피해를 더욱 키우지는 않는다는 게 분명하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래서 이 M-16 담판은 한진의 그룹 역사에서 부끄러운, 그러나 지워내기엔 분량이 너무 방대한 수완(협잡)의 역사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보며 가장 의미 있는 경영진들의 ‘결단’이자 ‘경영활동’이었다고 하겠다.

근래에 눈길을 끄는 ‘경영활동’ 중에 대한항공의 리스크 관리가 기자로서는 단연 관심이 간다.

대한항공은 최근 여러 고장 문제 등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는 바, 여러 언론의 취재에도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식으로 대범히 대응하고 있다. 고객들을 불안하게 느끼지 않게 하려는 점에서, 대한항공의 보국(報國) 마인드가 진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돌이켜 보건대, 대한항공이 그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국면을 떠받쳐온 한 축이었음에는 이견이 별로 없고, 기자도 그런 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한항공의 세심한 리스크 관리가 실제로 정비를 완전무결하게 하는 쪽으로 발휘되어야지, 이를 ‘어떻게 이미지 메이킹하는가’로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서는 앞으로 많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기자는 갖고 있다.

실제로 여러 차례 빚어지고 있는 일련의 고장 퍼레이드 중에서 백미로 꼽히는 지난 연말 발생한 나리타공항 타이어 펑크 사건에 대해 항공업계에서 동업자 의식을 갖고 있는 인사들마저도 “이건 뭔가 아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항공업에 오래 몸담은 어느 인사가 국토해양부에 마침 방문했을 때 나리타공항 사고 건으로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급히 오갔다는 점을 전하고 “어떻게 이런 점이 보도가 안 되었냐(관련 보도가 본지 등에서 뒤늦게 제기되기 전에 나온 발언임)”고 우려한 데 대한항공의 모든 문제점이 농축돼 있다고 본다.

즉, 선대에서는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일종의 협잡을 불사해서라도 대차게 치고 나갔지만, 현재의 대한항공 논리는 ‘정비 완전주의’는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일명 대관(對官) 업무와 언론 케어를 통해 안심을 시키는 데 방점이 찍힌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같은 리스크 관리라 해도, 이렇게 다르게 변한 한진 창업세대와 대한항공. 식구를 생각하고 외화 한 푼에 목마른 조국을 생각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던 기업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와 주가 방향도 걱정해야 하는 기업의 처지는 물론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협잡질이 세련된 오늘날의 KAL식 리스크 관리 방식보다 낫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국가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목숨을 건 ‘조 브라더스’의 배짱이 그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