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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中 은탄외교 닮은꼴 국민은행 해외투자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1.21 09: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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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때 자유중국이라고도 불렸던 대만은 ‘은탄외교(銀彈外交)’라는 표현을 세계 외교사에 남겼다. 서로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던 북경의 중국 정부와 대만섬의 중화민국 정부는 어느 국가가 반대쪽을 외교 파트너로 택하면 이전에 설치했던 외교공관을 철수하고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전쟁을 치러왔다. ‘핑퐁외교’ 이후에 미국으로부터도 외면받은 대만은 결국 1980년대만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외환 보유고 등 경제력을 무기로 ‘돈으로 발을 넓히는’ 초강수를 뒀다. 각종 물적 지원을 통해 환심을 사 ‘반중국 외교망’을 구축하려 든 것이다.

현재는 ‘G2’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로 미국 못지 않은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오히려 원조격인 대만보다도 더 강력한 은탄외교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등 자원이 풍부한, 그러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절실한 국가들에 각종 물적 투자와 사회공헌 등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아프리카 등의 고급 두뇌들을 북경에 불러들여 교육시키는 유학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친중국 고급 인력을 세계 곳곳에 깔고 있다.

북경식 은탄외교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으로 정점을 찍은 듯 하다. 미국은 ‘환율전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치열한 중국 등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환율 절상 필요성 관련 논쟁을 이번 정상 회담에서도 꺼내 들었다. 대만 문제와 중국내 인권 유린 문제 등도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퀴즈였다. 하지만, 중국은 오바마 행정부에 ‘통큰 선물 보따리’를 안김으로써, 이같은 난제들을 사실상 모두 무력화시켰다. 450억달러 상당의 경제 효과 유발을 선물로 안기는 중국에 강한 공세를 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돈으로 외교적 우위를 점하는 셈인데, 테이블에서는 웃으면서 그 아래로는 은탄이 든 총을 겨누고 있는 중국식 협상 전략은 ‘돈으로 발랐다’는 표현으로 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예술적인’ 면이 있다.

요컨대, 돈으로 친구를 산다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으나, 친구를 사귀고 발을 넓히는 데 돈을 한 방편으로 혹은 유효한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게 냉엄한 외교와 국제경제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걸 잘 하는 협상주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이런 국제적 수준에 미달해 보이는 감이 없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닻을 올리는 시점에서부터 ‘자원외교’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사용해 오히려 새로운 포섭 대상으로 부각된 국가들을 내심 불쾌하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샀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홀대를 당한다는 우려섞인 분석기사들이 일찍부터 나온 것도 이런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실리는 못 얻고 체면도 안 서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의 한 발로라고 여겨진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은탄외교를 국가적으로 십분활용하는 이웃과는 정반대로 다른 상황이다.

국가 뿐만 아니다. KB국민은행이 세계 무대에서 돈으로 발을 넓혀 보려다 실수로 망신살을 자초한 일은 한국 금융사에 두고두고 타산지석 케이스로 남을 만 하다. 카자흐스탄 BCC 은행 투자 건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은행이 해외 진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나, 다른 은행들이 모두 해외 진출 경쟁에 나선 터라 국민은행이 몸이 단 것은 불가피한 면이 크다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2008년 3월, 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에서 자산 규모 5~6위 은행인 BCC에 대한 인수합병 계약을 발표하는데 그 내막을 나중에 보면 상당히 당혹스러운 면이 크다. BCC 지분 중 30%를 6억3000만달러(약7249억원)에 사들이는 조건이었다는 것인데, 또한 당시로부터 30개월 이내에 BCC의 지분 20.1%를 추가 매입해서(이 경우 국민은행 지분은 50.1%) 경영권을 장악하는 초강수였다. 당시는 2007년 여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조짐으로 해외 은행 인수가 매우 위험하다는 분위기였다. 카자흐스탄 은행권 역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야말로 돈으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다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은행의 당시 경영진이 이런 무리한 인수합병을 시도한 이유, 또한 경영진이 이사회에 거짓 보고까지 해서 수천억원 규모의 손실을 내게 했다는 조사 결과에 비해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 수준은 결코 높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배임 혐의 등으로 형사 고발은 안 함).

심지어 이를 놓고 민주당 이성남 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카자흐스탄에 대한 자원 외교의 반대급부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BCC를 지원한 것이 아니냐”라고까지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다.

은탄외교는 상당히 위력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냉철한 두뇌와 오랜 사귐에서 오는 신뢰감 없이 운영을 하는 것이기에, 그야말로 일순간에 돈으로 남과 사귀려 하고, 뭔가를 남에게서 억지로 얻어내려고 하는 야비한 수단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은탄외교의 단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MB식 자원외교, 그리고 KB식의 투자망 넓히기는 은탄외교의 가장 안 좋은 예가 아니냐는 비판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참고로, 대만은 은탄외교의 부작용으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많은
   
 
벗(?)들로부터 외교단절을 선언당하면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다시 종합하자면, 돈으로 친구를 잠시 살 수는 있어도 제대로 된 파트너를 고르고, 그 돈으로 산 환심을 영구적인 호감으로 굳히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의 ‘통큰 투자’와 ‘은탄외교’를 보면서, 우리는 여전히 대만식 은탄외교 수준의 외교와 투자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든다. 총 한 번 폼나게 쏴 보려다 제 머리에 수천억짜리 총알 맞는 경우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