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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파일럿’ 협찬 시절의 대한항공, 그땐…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1.20 15: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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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93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파일럿’은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지금 한국 남우의 주요 계보를 잇는 인물인 최수종과 이재룡, 한석규 등이 남자주인공 3총사로 등장했고, 채시라가 히로인을 맡았다. 조종사들의 교육 및 훈련과정에 활용되는 ‘시뮬레이션’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선보인 것도 이 드라마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1995년에 공군사관학교를 무대한 ‘창공’에서 이 같은 기법이 잘 드러난 것을 비교해 보면, 대한항공이 협찬을 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MBC가 입은 수혜는 대단했던 셈이다.

미국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등을 로케이션을 진행하거나 했던 일도 기실 큰 항공기 바이어인 대한항공의 후광이 없었다면 방송사 독단으로 따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후문이 있었다. 김혜수가 당시로서는 낯선 직업이었던 항공경영직원(발권 및 여객 운송 등 일반경영 전반을 다루는 직책. 대한항공의 이런 직역 종사 인력을 기르기 위해 인하공전에는 스튜어디스 양성과인 항공운항과 외에 항공경영과도 존재한다)의 업무에 대해서도 소개가 됐다.

음정희가 교육 수료를 통해 스튜어디스에서 정비사로 전관하는 것도 ‘여자를 사무실의 꽃’이라거나 ‘결혼하면 퇴직하는 게 어느 정도 관행으로 남아 있는 시대’이던 시대적 인식에 비해서 상당히 앞서가는 직업관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비, 더 크게 보자면 안전관리에 대한 강렬한 대한항공의 인식을 드라마를 통해 국민들이 확인한 데 있다고 하겠다.

당시 항공대학교 출신(대한항공의 모그룹인 한진그룹은 항공대 재단을 갖고 있다)으로 설정돼 있던 최수종은, 공사 출신인 입사동기와 사사건건 다투는데, 이들은 몸싸움까지 이르는 앙숙이다. 그런데 이들 두 부기장이 ‘견원지간’이라는 걸 인지한 직장 상관(기장)이 이들을 엄하게 꾸짖는 부분이 있다.

이들을 꾸짖기 위해 무대로 설정한 곳은 다름 아닌 정비창. 기장은 “정비사들은 항공기를 탈 일도 평생 별로 없지만, 소리만으로도 비행기가 어디가 아픈지를 알 정도로 집중해서 일에 매진한다. 저런 그들이 정비한 비행기를 너희처럼 손발 안 맞는 조종사들이 몰고 나선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타이른다.

대한항공이 평소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안전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새벽에도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을 이 기장역의 탤런트가 잠재적 항공 고객인 국민들에게 대신 해 준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드라마 제작에 협찬을 제공할 당시 대한항공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하기는 했지만, 국적기라는 자존심이 아직 오연했고 대한항공이 모그룹 한진의 주력 날개라는 인식이 강했고 사세도 확장일로였다. 자랑스러운 달러벌이 일꾼이자,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한항공 원동기정비공장 부장을 지낸 김용기씨가 1974년 대한항공 입사한 이래 34년 동안 항공기 엔진 1000여기를 수리한 뒤에 2000년 회사가 부여하는 ‘명장’의 칭호를 받은 것은 그 자존심을 구성하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그 명장 칭호를 받은 김씨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사소한 잘못 하나로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며 자신의 일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 대한항공맨으로서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과시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안전의식은 이 ‘파일럿’ 시대만 못한 것으로 요새 느껴진다.

근래에 제주항공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항공운송 표준평가제도인 IOSA(IATA Operation Safety Audit)의 제3차 기준 평가(The third Edition)에서 국내 최초로 무결점 인증을 받았는데, 이는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앞지른 일이다.

IOSA 인증을 받은 국내 항공사는 제주항공을 비롯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등 4개사이나, 3차 기준을 저가 항공사에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수위권 항공사들이 뺏긴 것이다.

더욱이, 대한항공의 자존심에 한층 더 생채기를 내는 일이 최근 독일 항공조사국(이하 JACDEC)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세계 안전운항 1위 항공사는 호주 퀀타스항공인 반면,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들의 안전도가 하위 수준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여행업계에서는 서비스 고급 이미지에 주력하고 있는 국적항공사들의 마케팅전략을 항공기 안전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JACDEC의 ‘2010 항공안전도 순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경우 55위에 그쳐 아시아나항공에 비해서도 한
   
 
참 밀렸다(아시아나항공은 45위). 이 같은 순위 배경에는 지난 1999년 이후 대형 인명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1997년 괌 사고와 그 이전 크고 작은 항공기 사고 여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사정이고 보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KAL기가 타이어 펑크 사고를 쳤다는 뉴스는 고민거리도 못 된다.

명장 김씨, 그리고 드라마 ‘파일럿’의 정비창 장면이 더욱 그리운 엄동설한의 나날이다. ‘파일럿’ 협찬 시절의 대한항공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