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공업단지에서 정형용 교정장치를 생산, 수출하는 A사는 이달 초 일본 수출물량을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최근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적자폭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힘들게 시작한 수출을 중단할 수는 없어 일단 규모만 줄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일본 수출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원-엔 환율이 9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 급락으로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체들의 수출 여건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환율이 100엔당 800원 선 아래로 떨어짐에 따라 가뜩이나 세계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힘든 싸움을 벌이는 국내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원화는 금리 인상 추세와 추석 연휴 직전 자금수요 증가로 강세를 보였지만, 엔화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가치가 떨어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환율변동에 따른 한일수출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달러화에 대해 원화 환율이 하락하는 데 비해 엔화 환율은 오히려 상승하는 ‘탈동조화’ 현상으로 인해 한국 제품의 대일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미국과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 시장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비재 관련 제품은 출시 후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원화 강세로 인해 한국제품의 가격인하폭은 적고 일본제품의 가격인하폭은 커 한국의 대일 제품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가격 이외에 승부수를 걸 만한 별도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일회용 주사기, 카테터 등을 생산, 수출하는 B사 관계자는 “값싼 중국제품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일본제품의 가격 경쟁력마저 높아져 수출에 타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는 마땅한 대책이 없어 관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행여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X선촬영장비 전문업체 C사는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이처럼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가격경쟁력 약화로 제품 공급 및 판로개척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에 수출계약 맺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하락은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게 회사의 분석이다.
의료기기업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사업규모 및 자금력에서 영세한 우리 의료기기 수출업체들은 환율하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들이 체계적으로 선물환 투자나 환 변동 보험 가입 등을 통해 환 위험을 관리하는 것과 달리 대다수가 중소기업인 의료기기업체들은 환율에 대한 인식이 낮을 뿐 아니라 대응 방식도 원시적이라는 것.
따라서 환율변동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환리스크 관리 교육을 확대하고 세제·금융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급락세가 지속되면 중소 수출업체들의 어려움이 점점 가중되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환율하락 폭과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고 세제·금융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업체에서도 환리스크 관리·수출시장 다변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