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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인신매매식 집단소송에 공정위 호루라기

현대차 비정규직 집단 소송 무효 처리…현대판 노예계약 제재

이용석 기자 기자  2011.01.11 16: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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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조합원(1900여명)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낸 집단소송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일부 조항이 부당하다고 내린 무효결정이 세간의 화제다.

공정위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집단소송을 위한 작업에 약관법이라는 공정거래법 개념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거액의 돈으로 족쇄를 매 한 번 얽혀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인신매매식 집단소송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현대차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의 원고로 참가한 사내하청노조 조합원 중 일부는 지난해 12월2일 변호사와 체결한 위임계약서 일부 조항에 문제가 있다면서 공정위에 도움을 청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약관심사자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해당 조항의 위법 여부를 검토한 결과, 위임계약서 일부 조항이 약관법을 위반하여 무효라고 판단, 지난 7일 금속노조 변호인에 대해 해당 조항의 수정 또는 삭제를 권고하는 시정권고 공문을 발송했다.

◆공정위 4개 조항의거 무효 처리

공정위가 무효라고 판단한 4개 조항 중 먼저 5조(위임계약의 해지)는 위임한 사무에 협조하지 않으면 변호인이 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위임인에게 200만원의 위약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위임계약에 보장되는 상호 해지 자유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고 고객에게 불리한 약관으로 약관법상 무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같은 5조에서 ‘불법파견투쟁과 관련한 지침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위임계약을 해지하도록 한 조항 역시 투쟁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고 해당 집단소송의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유인데다 위임인인 조합원의 노조활동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하다면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제4조의 ‘변호인이 많은 노력을 투입한 뒤’ 위임인이 정당한 이유없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등에 위약금 5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약관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배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노력이라는 점에 대한 객관성이 부족하므로 결국 위임임만 과중하게 배상의무를 진다는 점에 공정위도 공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3조는 소송결과와 상관없이 소송비용을 위임인이 균등하게 분담하도록 한 조항으로 고객에게 불리한 규정이기에 무효라고 결정했다.

◆집단소송 노동자들 이탈자 증가 할 듯

공정위의 이 같은 시정권고를 받은 변호인은 60일 이내 해당 약관조항을 수정 또는 삭제한 뒤 공정거래위에 보고해야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이 내려진다. 시정명령마저 지키지 않으면 약관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과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금속노조가 준비한 집단소송은 전체적으로 중간점검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집단소송의 향후 진행 문제는, 이같은 위법적 요소를 제외한 위임 계약서를 다시 만들고 원고단(집단소송 참가자들)에 동의를 구하는 물리적인 문제만 남기고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더 눈길을 끈다.

첫째, 집단소송 원고들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집단소송에 일단은 참여했지만 이후 각종 진행 상황에서 금속노조의 행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층의 일부 이탈이 예상된다. 이들은 그간 위약금 조항으로 인해 소송 탈퇴 및 노조 탈퇴를 하지 못했던 면도 없지 않은데, 이 인원들이 공정위 시정권고 결정으로 인해 집단소송에서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 해 7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계기로 집단소송에 참여하면 정규직이 됨과 동시에 그동안의 임금차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고 기대해 왔으나, 해당 판결은 원고 1인에 대한 판결에 불과해 앞으로도 많은 소송 난제를 넘어야 한다는 실망감이 현재 바닥에서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승소가 힘들거나 소송의 장기화로 인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조합원들이 집단소송 포기로 선회할 가능성이 이번 위약금 족쇄 제거로 높아진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공정위 결정으로 그동안 큰 위약금에 대해 둔감했거나 몰랐던 집단소송 참가 노동자들이 분노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은 점도 거론된다. 이 문제는 집단소송 지속 여부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 이 문제의 구조를 살펴본 이들 중에는 정규직이 못 돼 경제적으로 윤택한 편이 아닌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거액의 위약금, 성공보수 항목 등으로 족쇄를 채워놓는 소송 위임 약관에 서명을 하게하고 이러한 문제를 자체적으로 잡아 개선하지 못한 노동운동계를 믿고 집단소송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없지 않다.

윤락가에서나 통용될 ‘빚 지우기 방식’으로 이탈자를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노동적, 반인권적이어서 뼈아픈 반성이 촉구된다는 지적이다. 성매매에 필요한 여성의 공급과 관리의 방법의 경우, 1980년대 후반 문제가 된 봉고차를 동원한 강제적 여성 납치와 인신매매 방식이 지탄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가장 비윤리적인 대목은 돈을 벌 목적으로 제 발로 찾아온 여성에게 일단 어떻게든 빚을 지운 후 고액의 일수를 찍게 하고 생필품 가격이나 손님을 받지 못하는 등에 대한 벌금 등을 고액으로 물려 빚의 악순환에 빠뜨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아가씨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목돈을 쥘 수도 없고, 종내 빠져나가지도 못하게 된다. 집단소송이 비정규직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어도 이렇게 빚지우기 위협 약관으로 지탱되어서는 윤락가 논리와 오십보백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이번 공정위의 문제 제기는 노동운동계 전반에 대해 목적뿐만 아니라 수단도 올바르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당부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