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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한카드, 독사과 씹은 건 아닌지…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1.07 09: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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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 귀퉁이가 씹힌 듯한 사과 로고를 붙인 애플사의 전자제품들이 요새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매킨토시 컴퓨터에 랩탑인 맥북, 거기에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발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애플의 상품들은 전세계의 많은 얼리어댑터들의 열광적 반응을 사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애플빠’들을 설레게 하는 애플 로고에는 천재 과학자의 비극적 이야기가 숨어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 ‘애니그마(독일어로 수수께끼라는 뜻)’를 깨기 위해 연합군은 골치를 썩였다. 이때 이 작업의 중추를 맡은 인물이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

27세에 이미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튜링 머신’을 고안했던 그는(컴퓨터는 연산으로 인풋된 정보를 처리, 아웃풋을 내놓으므로 수학자들이 컴퓨터 발전에 큰 몫을 차지해 왔다) 세계 최초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보다 2년을 앞선 연산컴퓨터를 내놓으며, 독일군 애니그마를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승전 이후 단 한 가지 이유, 성적(性的)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내동댕이쳐졌다.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일종의 화학적 거세 처분을 받았고,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독물이 주입된 사과를 스스로 씹어 생을 마감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이름을 ‘애플(Apple)’이라고 지었고, 한 입 씹힌 사과모양을 로고로 택해 천재 과학자의 재능과 애국심을 저버린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담아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슬픈 과학자와 과학기술의 초상은 튜링 사건으로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기자는 본의 아니게 2011년 신한카드의 전산과학적 기술과 금융공학적 능력이 시대와 불화하는 모습을 보게 돼 참으로 유감스럽다.

신한카드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손잡고 변호사 신분증 카드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 상품은 올인원(카드 한 장에 신분증과 신용카드 기능 및 교통카드 등 여러 복합적 기능을 모두 넣는 일) 상품으로 설계하지 않고, 신분증 따로, 변호사용 신용카드 따로 2장으로 발행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이미 본지 기사(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367)가 언급한 대로, 이같이 상품을 구성하면 종이에 코팅된 신분증을 사용하던 때와 별반 큰 이점이 없을 뿐 아니라(바코드를 대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접견이나 검찰청 방문 등을 할 때 법무부 공무원에게 맡기고 들어가기는 매일반임) 이러한 상황에 신용카드만 굳이 한 장 더 만들게 하는 강요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일반 변호사 회원 입장에서 보면, 여러 협회 차원의 고민과 결단 보다는, 왜 굳이 카드를 한 장 더 만들라고 하는가, 그리고 신한카드를 신청 안 하면 변호사 신분증 발급마저 덩달아 거부하는가의 문제적 상황만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적 불편함은 결국 논리적 귀결은 어떻든 신한카드에 일정 부분 이상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한카드 관계자의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신한카드 모 관계자는 기자가 지적한대로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를 못하고 이 같은 어중간한 형태로 매듭지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주장은 “신한카드는 올인원을 하려고 제안했으나 변협에서 신용카드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다닌다는 문제 등을 들어 신분증 따로 신용카드 따로 2개의 카드를 원했다”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들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해도, 이를 권위주의적이라든지 그들이 신분증을 잠시 영치하는 기관인 교정이나 검찰의 직원들을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이냐는 식으로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금융거래용 정보를 남의 손에 내돌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여러 정황을 볼 때 본 기자는 신한카드의 고충을 진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신한카드의 업계 성적은 상당하며 더욱이 신한금융그룹 전체 실적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하게 하면서 때로 신한은행이 부진할 때에도 이를 떠받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이 열린 지금, 여신업계는 치열한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나SK카드가 약진을 도모하고 있으며, 롯데카드가 유통계와의 협력을 통해 화려하게 분전하고 있고, 더욱이 숙적인 KB카드는 법인 분사를 준비하는 일에 최기의씨를 사령탑으로 내세운 상황이다. 야전사령관으로 등장한 최씨는 금융인으로서 역량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한때 KB국민은행장감으로도 거론될 정도로 인품과 지도력에서도 탁월한 인재라 신한카드 따라잡기 전선에서 그의 등장이 갖는 의미가 무겁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에 이 관계자가 거론했듯 “어쨌든 신한카드가 변협을 가르치려 들 수도 없는 일이니까” 결국은 해 달라는 대로 기술력이 100이 있음에도 50짜리 상품을 내놓아서라도 당장 1만2000명 오피니언 리더급의 우수고객을 잡으려 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지만, 그 뒤끝도 생각해야 하는 게 복잡한 금융시장의 생리다. 이미 지적했듯, 그렇게 변협이 주문하고 또 영업 전략상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해도 신한카드에 가해질 수 있는 1만2000여 변호사 중 상당수의 부정적 이미지는 어쩔 것인가라는 장기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신한카드는 치열한 영업전선 논리에 매몰돼 스스로 당당하게 이럴 바에는 안 팔겠다고 할 기백을 잃어버렸다고까지 이야기할 것은 아니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만은 분명하다. 당장 먹을 게 없어서 독사과를 씹은 신한카드, 그래서 이번 선택이 안타깝고 신한카드의 재능을 몰라주는 모양새로 탄생한 변호사카드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