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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씨뱅이’와 ‘짐승유’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1.04 17: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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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은행계를 잘 보면 재미있는, 그러나 당사자로서는 별로 탐탁지 않은 별칭이 더러 눈에 띄인다.

일례로, 우리금융그룹에 속하는 우리은행을 타은행에서는 ‘워리뱅크’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는 우리라는 명칭을 특정한 한 은행이 독점,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법정 공방전까지 치른 상황을 겹쳐 보면 이해가 쉽다. 더욱이, 우리금융그룹이 공적 자금 회수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항상 작아지는 모습이 국민들의 ‘워리(worry)’ 아니냐는 재치있는 해석까지 따른다.

씨티은행 출신을 가리킨다는 ‘씨뱅이’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씨티은행은 지금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조인선 의원 등 여러 걸출한 금융계 인사들을 배출하면서 한때 선진금융기법을 한국에 널리 퍼뜨릴 ‘인적자원은행’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인사들과 달리 상당수 씨티은행 출신들은 외국계 출신이라 국내 금융시장 상황을 잘 모르고 답답한 소리만 한다는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이들을 좀 비아냥거리는 명칭이 ‘씨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씨뱅이’라는 말에 대한 한국씨티은행 홍보 관계자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당시 과장급쯤이던 이 직원은 “이런 표현이 실제로 있고, 또 널리 통용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표현을 써 가며 칼럼을 쓴 어느 주간지에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크게 괘념치 않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가십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진 기자보다 적어도 이 애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층 넓은 도량을 보여준 셈이었다. 실제로 해당 주간지에 문제의 은행에서 어떤 항의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실력과 실적으로 씨티 출신들의 저력을 보여주면 된다는 뜻이었던 셈이다.

작금의 은행계 이슈는 단연 하나금융그룹의 외환은행 인수 추진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노조 간부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표현을 문제 삼아 글을 내리거나, 아니면 하루에 1억원 꼴로 부담을 지라는 가처분을 제기한 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하나금융그룹의 임직원들로서는, 자신들의 상관인 김승유 회장의 결단과 구상에 대해 그저 노욕으로만 평가하고 추진 과정과 추진 역량을 송두리째 의심만 하는 외환은행 노조가 곱게 보일 리 없다.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의 모태격인 하나은행이 단자사(short-term investment & finance company)에서 출발해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 욱일승천한 와중에 많은 M&A가 있었고, M&A가 매번 많은 잡음을 냈던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오랜 역사를 가진 외환은행 측이 아쉬움을 갖고 반발하는 점을 용납 못할 바가 아닌지 대국적 견지에서 지켜볼 필요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하나금융으로서도 자신들의 수장인 김 회장을 ‘노욕덩어리’ 혹은 그 이상 험하고 추한 말로 몰아세우는 걸 언제까지고 모두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노욕도 모자라 아예 ‘짐승유’라고까지 욕하는 상황임을 본 기자도 알고 일말의 안타까움도 갖는 바이다. 다만, 그 참는 한도는 위로 올라갈수록, 부유해질수록 넓고 깊어진다는 점을 당부하면서, 이러한 예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당나라 고관 중 누사덕(屢師德)이라는 자가 있었다. 한번은, 그 아우가 대주(代州) 자사(刺史)로 임명되어 부임하려고 했을 때 이렇게 훈계했다고 한다. “우리 형제가 다 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건 좋지만, 그만큼 남의 시샘도 남보다 갑절은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누사덕은 동생에게 “어떤 사람이 너에게 침을 뱉는다면, 너에게 뭔가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그 자리에서 침을 닦으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상대는 틀림없이 더욱더 화를 낼 것이다. 침 같은 건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말라 버리니, 그런 때는 웃으며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고 했다 한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사가 참아야 할 바도 이러려니와, 사실상 한국 은행권을 1/4이나 떠받치는 김 회장임에랴. 어찌 보면, 이번 소송 문제는 외환은행 노조 입장에서 하나금융 쪽의 ‘아랫 것’들이 높은 분의 넓은 도량을 미처 알아 보지 못하고 과잉충성을 한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생각하기엔, 금융그룹 회장쯤 되면 ‘짐승유’ 별명에는 웃고 넘길 줄 아는 부도옹 자세가 어울리지, 부하직원들을 시켜 송사 압박을 할 정도로 파르르하거나, 그러한 과잉충성을 즐겨 추인할 도량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물며 저런 한국씨티은행 과장도 있었음에 무슨 말을 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