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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인간존중 롯데마트, 바가지밥 권해서야

임혜현 기자 기자  2010.12.29 08: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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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28일, 평소 대형마트를 잘 찾지 않던 기자는 롯데마트 부평점에서 장을 봤다. 외가에 들르기 전에 저녁거리를 사들고 가려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번 찾았을 때 못 보던 풍경이 있었다. 계산대 캐셔 아주머니들이 분홍색 비닐 봉투를 손님들에게 내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번에는 내구성이 약한 종이 봉투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외가에 도착, 짐을 부려 보니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닐 봉투가 다름 아닌 쓰레기 종량제 봉투였던 것인데, 그래서인지 종이 봉투보다 영수증에 찍힌 봉투값도 세게 매겨져 있었다(종이 봉투 값은 100원 對 비닐 봉투 620원).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는, 꽃분홍 비닐이 쓰레기나 담는 종량제 봉투였다는 데 있었다.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원작인 '불멸' 저자인 김탁환이 지은 역사소설 중에 '열하광인'이 있다. '열하광인'엔 의금부도사가 거지소굴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끼니 때가 되어 손님대접이라고 거지밥이 바가지 셋에 담겨 들어오는 대목이 있는데, 극중 화자인 도사가 '가을엔 여기서 동냥얻고 겨울엔 저기서 훔친 바가지밥을 먹긴 싫었다'는 내심을 쓴 부분이 있다. 아무리 편의성 떨어지는 종이 봉투에 고생을 했기로서니, 쓰레기인지 뭔지 아리송한 꾸러미를 외가 부엌에 "드시라"면서 부려놓고도 심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기껏 돈벌어 가족, 친지에게 먹고 입힐 거리를 왜 굳이 종량제 봉투에 담게 하는가.

물론 롯데마트로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인터넷으로 몇 가지를 찾아보면서 알게 됐다.

재사용 종량제 봉투 아이디어는 2008년 행정안전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아이디어에서 채택된 것이라 한다. 롯데마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다. 본 기자, 장보기 잘 안 해서 이런 업계 전반 유행 문제에 무심했음에도 롯데마트에만 화냈던 점 일말은 송구하다. 그러나 본 기자가 과문하기는 하나, 이같은 몇 가지를 더 알아 보면서 더욱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마트의 경우 소비자들이 100원에 판매한 종이 봉투를 가지고 오면 100원을 전액 보전해 주고 있었다. 또한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종이 봉투 구매를 꺼리는 고객들을 위해 장바구니 대여를 하고 있다. 보증금 3000원을 맡기면 무료로 장바구니를 빌릴 수 있다.

그런데 본 기자가 알기로는 롯데마트 종이 봉투는 환불이 안 된다.

환불도 안 되고, 내구성도 떨어지는데 옆에 종량제 봉투가 있으니, 당연히 그걸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산 물건을, 더욱이 개중엔 먹거리도 꽤 되는데, 그걸 당초 쓰레기 담도록 마련된 봉투에 담게 하는가. 이렇게 옵션도 빈약하게 준비해 사실상 종량제 봉투를 사게
   
 
유도하는 롯데마트는, 다른 마트와 달리 이처럼 비인간적이라고 비판을 해도 똑같이 항변할 자격이 없다.

고객이 사들고 가는 먹거리가 거지 바가지밥이냐?

더군다나 롯데마트는 인간존중과 친환경, 문화생활을 지향한다고 한다(2006년 롯데마트 CI 공모전 공고 참조). 이런 바가지밥 나르기를 은연 중 권하는 태도가 인간존중인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