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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 母子공방 ‘2라운드’…내우외환 가중

집안재산다툼에다 부채 1년 새 3000억원 ‘훌쩍’…불안한 2세승계

류현중 기자 기자  2010.12.14 11: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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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녹십자 경영진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녹십자 창업주인 허영섭 회장의 타계 이후 유산분배를 둘러싼 모자 간 법적공방이 2라운드로 치달았다. 불투명해진 경영승계에 이어 최근 수억대에 과징금 판결도 그룹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 지난해 뜻밖의 호재로 작용했던 신종플루 여파가 수그러들면서 기업부채는 1년 새 3000억원대를 넘어섰다. 모자 간의 법적공방과 위태로운 2세 경영승계, 구조조정 위기 등 녹십자는 그야말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2009년 11월15일 녹십자를 국제적인 생명공학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주 허영섭 회장이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69세. 당시 재계와 업계는 B형 백신 개발 등 ‘국내 백신 주권 지킴이’로 평가되어 온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곧 고인의 명예에 흠집이 가는 일이 벌어졌다. 고인이 작고한지 불과 열흘만에 장남 성수씨가 고인의 유언장과 관련 “아버지가 뇌종양 수술로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갖추지 못했었다”며 ‘유언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던 것이다.

허 회장은 작고 1년 전 유언장을 통해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여주 가운데 30만여주와 녹십자 주식 26만여주 중 20만여주를 A복지재단 등에 기부하고, 나머지 주식은 부인 정인애 여사와 2남 은철씨, 2남 용준씨에게 물려준다고 남겼다. 장남 성수씨는 제외됐다.

이에 성수씨는 “유언장은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주도해 작성한 것이며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 아버지의 상태도 유언장을 남길 만큼 온전치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 모자 간 유산다툼이 시작됐다.

성수씨는 지난 2007년 녹십자 부사장을 끝으로 퇴사했다. 15년간의 미국유학생활을 마친 뒤 2005년 귀국해 녹십자에서 근무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2008년 초에는 아버지에게 경영기획실장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가 오히려 퇴사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장남은 2007년 이후부터 경영에서 배제됐고, 2남은 그룹의 연구조직을 이끄는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3남인 용준씨도 지주사 부사장으로 선임돼 경영승계를 위한 후계자 수업에 나섰다.

복수의 녹십자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남인 성수씨는 유산소송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성수씨는 우선 A복지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A복지재단은 상속받은 지분 중 일부인 녹십자홀딩스 및 녹십자 주식 약 8만주와 현금 4000만원을 반환하라’는 요구다.

◆허일섭 회장 지분매수 왜?

현재 녹십자는 금융감독원의 ‘고인을 최대주주로 해선 안 된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고 허영섭 회장을 제외하고 가장 지분율이 높은 주주인 허일섭 회장으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상태다.

따라서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아직 고 허 회장이 12.37%를 보유하고 있으며 은철씨와 용준씨는 변동이 없다. 가족들의 녹십자홀딩스 지분 보유율이 16.62%에서 10.5%로 뚝 떨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보유 지분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허일섭 현 회장의 지분은 최근 9.01%에서 최근 9.71%까지 늘어났으며 그의 3남인 진훈씨도 0.19% 장내매수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언장대로 허 전 회장에 지분상속에 따라 은철씨와 용준씨의 지분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허일섭 회장이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최대주주
이들을 밀어내고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업계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용준씨가 실질적인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다 해도 녹십자그룹은 제약사업 확대와 금융사업 정리, 신사업 창출 등 적잖은 과제를 안고 있다. 또 선대 회장의 자리를 이제 막 경영일선에 나선 허 부사장이 대신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신종플루 특수’ 사라지자 부채 3300억

녹십자는 지난해 신종플루라는 특수 호재를 맞아 업계 1위 자리를 노리는 듯 했다. 허나 이는 반짝 이벤트에 불과했으며 이후 실적 및 성장성이 불투명하다 게 전문가들에 진단이다.
 

특히 지난 3분기 녹십자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21%, 66% 증가하는 등 시장의 추정치 및 컨센서스를 15% 가량 상회해 우수한 성적표라는 자평을 내놨다. 허나 우수한 수익구조를 지닌 독감백신이 견인한 실적으로 독감백신을 제외하면 다소 빈약했다.

전문가들은 “400억원 규모의 계절성 독감백신 매출 반영으로 백신제제 전년동기비 53% 성장했으나 독감백신 제외한 기타 백신제제 매출액 전년동기비 31% 감소로 크게 부진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 3분기 녹십자홀딩스의 재무재표를 살펴보면 유동부채 194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약 312억원이 늘어났으며 비유동부채는 1422억원으로 지난해(240억원)에 비해 1182억원 가량 늘어났다. 총 3370억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내부 임직원들에 불안감을 키웠다. 지난 13일 약가 및 마케팅 담당 임원들은 시장형 실거래가제도 영향에 따른 당기손실이 커지면서 기업의 영업이익율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이 가시화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증시전문가들은 녹십자 그룹에 대해 “신종플루 특수에 따른 기저효과로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어닝 모멘텀 악화가 불가피하게 됐으며 독감백신 PQ인증과 M&A 지연 등 난제들이 줄지어 있다”고 진단했다.

그룹 내부로는 “부모와 자식간의 돈 다툼이 그룹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불투명해진 경영승계와 부실기업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녹십자의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전년동기대비 각각 28%, 68% 하락한 1619억원과 21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시장은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