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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럭비 정치인’, 필리버스터는 어때요?

임혜현 기자 기자  2010.12.13 1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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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지시간 10일,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이 타협해 논란 중인 고소득층 등에 대한 감세연장안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필리버스터란 소수파가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의사 진행을 방해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길게 연설을 늘어놓아 다수파를 저지하는 것이다.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지만 다수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인정되고 있고, 또 소수파의 의견을 경청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 효과에 긍정하는 이가 많다.

샌더스 의원 자신은 자기 연설이 필리버스터로 평가되는 일에 극구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지만, 어쨌든 이번 발언을 필리버스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샌더스 의원은 의사당에서 무려 8시간37분간 연설을 했는데, 그의 나이는 물경 69세. 고령에 무소속인 그가 정당정치, 그것도 양당제가 뿌리내린 미국 정치에서 의사 표시를 충분히 하고 국민들에게 그 같은 내용이 전달될 수 있다는 자체가 경이롭다.

그날 하루에만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4000여명이 팔로어로 신규동록 됐다고 한다. 또 연설을 온라인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상원 웹사이트 서버가 다운됐다.

최근 우리나라 국회가 다시 육탄공세장으로 변해 입길에 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의 물리적 충돌로 관심을 끌었는데, 그를 저지하려다 실패한 민주당 쪽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몸이 단단하기가 바위 같더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다. 예비역 대령인 김 의원은 육사 시절 럭비선수로 뛴 데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방북 협상을 할 때 밀착 경호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니 그 같은 실력과 체격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같은 체력과 체격을 정치에서 발휘해 ‘육탄국회’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일은 분명 정상은 아닐 것이다. 

   
 
소수파 의원들을 다수당 의원들이 합심해 사지를 붙들어 회의장 밖으로 들어내고, 럭비공을 들고 뛰는 필드에서처럼 육탄 실력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면, 이미 그것은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일 것이다.

미국 정치나 민주주의가 한국의 그것보다 고차원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일흔 나이의 노구로도, 또 소속이 없는 무당파 정치인이라도 정치적 양심과 양식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정치가 럭비 경력이 도움이 되는 정치보다는 낫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