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하늘처럼 끝없는 항공경영 의욕이 경제위기 여파 속에서도 타오르고 있다. 조 회장은 선친 조중훈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 경영에 전력해 왔으며 세계 유수 항공사와 경쟁하기 위한 ‘규모의 경제’ 발판을 구축하고자 전력질주 전략을 구사해 오고 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저돌적인 전략은 국제항공기테러 위협 상승이나 세계 금융위기 등 여러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면면히 유지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좋은 예는 알카에다 9·11테러로 인해 세계 항공업계가 얼어붙었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요 확장을 내다보고 사업을 펼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조 회장은 에어버스사에 최첨단 항공 기체이자 ‘하늘의 궁전’으로 불리는 A380을 대량 발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다. 물론, 조 회장의 이 같은 경영전략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영계나 학계 인사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A380 대량 도입에 대해서는 의문과 염려를 갖는 이가 적지 않다.
◆엔진 불안에 주기장 문제 등 우려 상승
호주 콴타스항공에서 도입한 A380에서 에어버스사 엔진이 불안하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한항공의 A380을 찬탄의 눈길로 바라보던 국내 항공계 내외의 눈길은 불안한 흔들림을 담게 됐다.
대한항공을 일으킨 고 조중훈 회장의 뒤를 이어 항공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어온 조양호 회장. 하지만 A380 문제로 향후 시험대에 서게 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
하지만 여기에 와류 문제 등 다른 문제들도 제기된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즉 일정 크기 이상의 건물이 서 있거나 기체를 고속 비행하는 경우 그 주변 기류 발생으로 인해 주변에 강한 공기 흐름이 형성되게 되는데, A380의 경우 국제적인 관제에 따라 항로를 유지해 다른 항공기들과 노선을 지정한다 해도 불안한 영향을 타 기체에 미칠 수 있다는 의혹이 있다.
더욱이 육상에 계류할 때에도 다른 기체에 비해 전장(총길이)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날개가 길어 다른 비행기의 주기 공간을 침해, 공항의 운영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한나라당 조원진 의원 지적 등)됐고,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제외한 공항에서는 이 초대형 기체를 받을 수 있는 주기장을 갖고 있지 못해 기상악화 및 안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제3의 착륙장을 찾는 데 애로가 클 것이라는 점도 숙제로 남아 있다.
◆경영은 알아도 항공미래는 모른다? ‘구식 3엔진 MD11’ 전철 우려
이 같은 문제점들은 미시적인 문제들을 많이 낳았다는 비판론은 물론 ‘조 회장이 경영은 알아도 항공 백년대계를 짚을 혜안은 아직 뜨지 못한 게 아니냐’는 점에서 우리 재계와 국민 전반에 낙담을 안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회장은 오랜 기간을 염두에 두고 운영해야 하는 항공사업을 오래 들여다 본,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인물. 선친의 뜻에 따라 한진그룹이 운영하는 인하대에 입학, 공업경영학을 전공하고 이후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객실운영, 일반경영 등이 모두 어우러져야 하는 회사를 잘 융화시켜 왔다는 평을 들어왔다.
하지만 회사를 세계 톱 수준으로 굳히기 위한 수를 두다 이번 A380 도입이라는 무리수를 성급하게 선택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는 것. 즉, 검증이 안 된 기체에 모험을 걸기에는 대한항공의 미래와 딸린 식솔이 너무 많고 회사 덩치도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다는 점이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과거에도 대한항공은 기체 도입에 무리수를 뒀다가 큰 손실을 입은 경험이 없지 않다. 즉 1991년 대한항공은 맥도널더글러스사(후에 보잉사에 흡수)에서 MD-11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때 도입 기종은 MD사가
대한항공이 한때 도입, 운용했던 기종 중 하나인 MD-11 기종. |
일본항공(JAL)이 1990년 4월 10대의 대량 발주를 하기로 발표하는 등 대한항공과 발주 경쟁이 붙기도 했다. 발주는 대한항공이 늦었지만, 실제 도입은 대한항공이 더 빨라 이 기종을 보유한 것은 대한항공이 아시아 최고가 됐던 것으로 당시 언론은 보도했다.
하지만 이처럼 한일간 MD-11 도입 전쟁, 더 나아가 아시아 항공시장 분할 전쟁은 문제의 기종이 사고 기종으로 낙인찍히면서 오히려 짐이 됐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후에도 이 기종을 화물기로 개조하는 등으로 하여 성공적으로 운용했고 일본도 이 기종을 이 같은 악평에도 불구, 도입 후 장기간 애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이 기종이 사고 기종으로 평가받은 점도 어느 정도는 억울하다는 비판도 있다. 즉, 2002년에 나온 ‘100만번 비행당 치명적 사고 발생률(FER: Fatal Event Rate)’ 자료를 보면, 콩코드가 12.5로 가장 높았고 브라질의 엠브래어 반데이란테 3.07, 에어버스 A310이 1.59, MD-11은 1.27 순이다(FER은 우발적 사고나 승객ㆍ승무원 또는 비탑승자에 의한 고의적 납치 파괴 군사행동으로 탑승객이 1명 이상 사망하는 경우를 표시).
하지만 대한항공은 1999년 MD-11 기종으로 4856시간을 조종하고 무사고 5000마일 표창을 받은 베테랑 조종사(고 홍성실씨)마저도 MD-11 사고(중국 상하이)로 잃는 등 적잖은 고통과 이미지 추락을 감수해야만 했다.
왜 그런가? 이 같는 MD-11은 대형화 경향을 읽기는 했지만, DC 계열 전철을 밟아 꼬리에 하나 달고 날개에도 엔진을 다는 이른바 3엔진 시스템을 답습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실제로 이후 기종 발달사를 보면, 3엔진이 아니라 각 날개에 2개 엔진을 다는 4엔진 시스템으로 대형기 발전을 도모해 왔고 초대형기로 이행하는 게 항공기 설계의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같은 항공업계의 흐름을 도외시하고 아이템을 잡은 것이라는 뒤늦은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A380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대한항공이 잔반처리반이 될 가능성’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러우나마 나오고 있다.
금년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금껏 에어버스와 보잉으로 양분됐던 항공기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즉, 앞으로 초대형기가 아니라 오히려 소형 비행기를 다량 제조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일례로 봄바디어는 150석 정원의 새로운 항공기 C시리즈(C Series) 개발에 나섰다. 이는 보잉의 737기나 에어버스의 A320기보다 연료효율성이 15% 높다. 지난해 유럽 최대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스위스 자회사에서 이용하기 위해 30대의 C시리즈를 주문했다.
브라질의 항공기 메이커로 기존 보잉-에어버스 양분 체제에 도전하고 있는 기린아 엠브라에르 역시 이 같은 추세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즉, 조 회장과 대한항공의 A380 도입 문제는 각종 자잘한 문제들 외에도 이처럼 큰 줄기를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어, 대한항공으로서는 MD-11 문제의 와신상담을 위해서라도 이번 문제를 빨리 점검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