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흔히 하는 말로 ‘소설 같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 같다’고 하면 굳이 가정하자면 일어날 가능성은 있으나,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용이 실현되겠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는 뉘앙스로도 변질되어 아직까지도 쓰이고 있다. 다만 원래 소설이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말하는 가치중립적 표현이다.
때문에 원래 같으면 소설에서 읽은 내용을 신문에서 나중에 볼 수도 있고, 신문 기사들이 모티브가 되어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창의성과 사건과 인물의 교직(배열) 능력, 문학적 향기를 어떻게 더하느냐하는 부차적인 문제만 남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소설가의 찬란한 상상력이 이미 기자의 현실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쓴 취재 기록의 촘촘함과 놀라움을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단 이야기이다.
덧붙여 어떤 의미에서는 ‘소설을 쓰기 편해진 시대’라는 생각이다. 소설 같은 일이 워낙 창작의 보조적 샘물로 기능해주니 말이다. 소설을 쉽게(?) 쓸 수 있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기자로서는, 참으로 외람된 말씀이지만,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이라는 신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다.
이 소설은 근래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혹은 취재현장에서 보고 듣고 읽고 쓴 많은 이야기들과 흡사하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이 같은 한국 경제의 복마전 상황 같으면 쉽게 쉽게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찾아낼 것이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물론 문재(文才)가 따라주는가는 별개의 사안이겠지만….
일례로 소설에서 다룬 문제의 그룹 중에 고급 여행가방으로 부정한 돈을 실어 나르는 장면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말한다’에서 주장한 비자금 조성 및 운반 방식과 흡사하며, 유사한 죄를 지은 총수들에 비해 자기만 불리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충격으로 기업의 법무 및 정보 조직을 강화하려는 총수의 얼굴은 한화그룹 김승연씨와 겹친다. 열사의 땅 중동에서 건설로 일어섰다는 기업의 창업사는 고 정주영 회장이 일군 현대건설 주베일항만 공사 신화를 연상케 한다.
물론 그냥 이리저리 있는 이야기를 교직해 짠다고만 해서 소설이 잘 되지는 않는다. 조 작가의 이야기의 힘으로 인해, 건설 분야는 비자금을 조성하기 쉽다는 소설 속 주장을 읽으면서는 그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국가원수로 있는 작금의 상황에 국격 논란을 불러올 법 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주인공격인 그룹 오너가 홀인원을 못해 안달하자 누군가 몰래 공을 살짝 밀어넣어 주고 홀인원이라고 치켜세워주자는 고민들을 그룹 고위급들이 하는 부분은, 롯데그룹의 황태자 신동빈씨가 제주도에 있는 자기 그룹사 소유의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한 대목에 의혹(?)을 제기하는 듯해 웃음을 나오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좋은 성취들을 보면서도, 전체적인 입맛은 쓰기만 하다. 결국 소설 같은 일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 이미 소설가가 창작거리 자체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게 주요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 작가 같은 천부적 이야기꾼, 더욱이 문재(文才)에만 기대지 않고 그야말로 공부 하듯이 끙끙거려 가면서
소설가가 소설 쓰기 편한 나라, 소설 같은 일로 점철된 고약한 나라에 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해 편하지 않았고, 앞으로는 ‘허수아비춤’ 같은 소설을 ‘그저 소설같은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있는 시대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