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외환은행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현대건설 매각 문제로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간의 대립각이 첨예하던 지난 2일 현대차그룹이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에서 1조5000억원의 예금인출을 단행했다. 또,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이 급여계좌 이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외환은행에 충격을 줬다.
앞서 지난달 29일 외환은행은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채권단 합의를 앞두고 단독으로 현대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논란이 됐다. 이에 정책금융공사는 외환은행의 MOU 체결규정 위반여부에 대해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채권단 사이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외환은행의 이런 모습이 현대차그룹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던 모양이다.
이후 법적분쟁까지 번진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외환은행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대그룹에 대한 채권단의 압박이 연일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에 청산 압박이라는 초강수를 띄웠다.
원활한 유동성과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은 예전처럼 은행에 굽신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큰소리친다. 외환은행을 상대로 벌인 현대차그룹의 압박이 이런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외환은행 인수를 앞둔 하나금융은 걱정이 태산이다. 외환은행 주요 고객의 이탈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 우려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가계 여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가계여신 비중이 43.8%를 차지하는 하나금융지주가 기업여신 비중이 70.2%에 이르는 외환은행 인수를 결정한 것은 온전히 여신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웬걸…. 외환은행의 핵심거래처가 현대차, 현대중공업그룹, KCC 등 범현대가에 집중돼, 현대그룹을 제외한 범현대가가 등을 돌릴 경우 유동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에서는 “현대차가 타은행에서 차환대출을 받아 외환은행 여신을 모두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은행 예대율을 보면 실현이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으로서는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습을 안팎으로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이 자칫 ‘감정싸움’에 뒤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감정싸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동네 구멍가게들 싸움도 이렇게는 안 할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