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공무원시험이 ‘도박’ 같은 이유

전훈식 기자 기자  2010.11.29 18:44:4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도박 실태를 다룬 언론기사의 제목 중에는 ‘대한민국이 도박 중독에 빠져 있다’는 식의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와 비인가 도박업소 등 불법성을 다룰 때는 물론 국가가 운영하는 경마장, 경륜장, 강원랜드 등의 폐해를 지적할 때도 이런 표현이 종종 나온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동산투기나 ‘단타 주식’ 등도 합법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도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엔 참으로 도박을 즐길(?) 거리가 많은 것 같다.

강원랜드에는 빅휠(BIGWHEEL), 다이사이(TAI-SAI), 블랙잭(BLACK JACK)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있다. 이 게임들은 고객들로 하여금 수치상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확률상으로 될 듯 하지만 막상 뛰어들어보면 ‘빼도 박도’ 못 하는 지경이 된다는 게 도박의 고약한 속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도박’이 또 있다. 다소 과도한 비유이긴 하지만, 많은 청년들이 마치 ‘공무원시험 도박’에 빠져있는 듯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독 현상까지 보이는 것 같아서 더 걱정스럽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공무원은 그 어느 직업군보다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남녀 불문하고 공무원은 ‘결혼하고 싶은 직업’의 최상위권에 랭크됐다. 물론, 공무원시험과 카지노 도박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채용 이후의 안정성을 믿고 카지노 승산률 만큼이나 낮은 공무원시험의 확률에 인생을 건 청년들이 늘고 있다.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인생을 거는 모습이 흡사 도박처럼 보여서 하는 얘기다. 

최근 통계치에 따르면, 9급공무원의 경쟁률은 82대 1다. 또 7급 공무원이 되려면 무려 115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단순 수치상 7급 공무원이 될 확률은 0.86%다. 개인의 노력과 실력에 따라 물론 확률은 달라지겠지만 수치만을 봤을 때, 많은 젊은 인재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따른 공무원 감축, 처우 축소 등으로 채용인원 27.6%(655명)을 감소시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경쟁률은 더 심해졌다. ‘청년실업 해소’에 대한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정부는 행정인턴제를 실시했지만 이 정책은 단기처방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종적을 감췄다. 청년실업 해소에 대한 정부의 해결의지가 젊은층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단적인 예다.

3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윤철호(28세, 서울 소재 대학생, 가명)씨는 “청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고 인턴제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생색만 내고 있다”며 “올해 역시 취업 전망이 전혀 밝지 않은데 솔직히 현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을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말, 외교통상부는 5급 특별 채용 최종 합격자로 유명환 장관의 딸을 뽑았다. 이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결국 채용 취소처리가 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공무원 특채 의혹이 끊이질 않고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건들은 공무원시험에 매달려 몇차례 낙방을 거듭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애를 끊는 고통을 준다. 

   
 
몇년째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다 보면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버리고, 나중엔 취직 타이밍을 놓쳐 어쩔 수 없이 다시 기약 없는 공직의 문만 두드리기 일쑤다. 공직을 희망하는 수요가 급증하거나 또 꾸준하다보니 유명 학원의 수강료는 월단위로 치솟기도 한다.

청년실업률이 10%를 육박하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됐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있는 청년들에게 이번 겨울바람은 살을 에는 추위로 느껴질 것 같다. 그들이 ‘한겨울 도박’ 같은 힘든 시기를 얼른 벗어나,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자신에 맞는 직장을 찾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