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우리의 삶은 ‘만남’을 계기로 많은 것이 바뀐다. 사람, 사건, 상황, 책 등이 그것이다. 그 중 사람, 사건, 상황과 달리 책은 시공의 제한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특집! 한창기]와 [언론 의병장의 꿈]이라는 책을 어쩌다 나란히 읽게 되었는데, 막 새 출발을 하려는 나는 온탕에서 찬물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창기 선생은 70-80년 대를 휘어잡았었다는 전설(?)의 월간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으로 지난 ‘구십칠 년’에 타계하셨지만 조상호 사장은 나남출판사의 현직 발행인이다. 물론 두 사람의 성향과 궤적, 실적이 서로 다르기에 수평선에서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줄 안다. 그러므로 각자의 호불호나 각별한 애정을 가진 이들이 나서서 ‘어디다 감히!’라며 트집잡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두 사람 모두 존경 받아 마땅할 공통점 한 두 가지는 분명히 있어 보이므로.
두 사람은 일단 성공한 사업가, 그것도 좀 유별나게 성공한 축이다. 둘은 모두 명문 법대출신이지만 판검사 아닌 의병장이 되었다. 조상호 사장이 ‘언론 의병장’이라면 한창기 선생은 ‘문화 의병장’이다. 의병장! 관군이 나서지 않는 척박한 싸움에 스스로의 몸을 던진 민간인들의 두목이다. 두 사람이 같은 출판인으로서 교류를 깊이 했던, 이른바 ‘의병 연합군’의 흔적은 이 책들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양쪽 진영에 동시에 참여한 사람이 둘을 동시에 언급하는 구절로 보아 최소한 서로의 존재성은 알았을 성 싶다.
‘한국 잡지출판의 역사와 문화는 [뿌리깊은나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한창기 선생의 영향은 독보적인 것 같다. 그가 선구적인 사업가 기질로 한국브리태니커㈜를 성공시켜 벌어들인 돈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이 혁신적인 두 잡지의 발행에 더해 한글, 판소리, 항아리, 방짜유기, 잎차, 고문화재, 모시, 염색, 인문지리학… …등등등 서구화, 산업화에 짓눌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전통민중문화의 우수성을 탁월한 안목으로 톺아내고, 복원하는 데 아낌없이 쓰였다. ‘좋은 일에는 돈을 불쏘시개처럼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70년대 박정희 독재 시절, 토박이 민중문화의 옹호를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표 안내며, 분명하게 던졌던 ‘뿌리깊은나무’는 결국 1980년 폭력적인 군홧발을 피하지 못하고 강제로 폐간되었지만 그의 열정과 집념, 순수와 선구안에 채색된 사람들이 ‘한창기 사단’을 이루며 우리 문화계의 면면을 쟁쟁하게 채워가고 있다.
조상호 사장 역시 서슬 퍼렇던 71년, 대학 2학년으로 운동권 지하신문 ‘한맥’의 편집장을 맡았다가 제적, ‘최전방 철책선 3번 소총수’로 군대에 끌려간다. 군대를 면제받은 나로서는 ‘3번 소총수’의 의미를 모르겠지만 어떤 특별한 느낌은 온다. 이미 정권에 ‘찍힌’ 그는 졸업 후 30대 초반에 나남출판사를 차렸다. 그런데 굶어죽기 딱 좋을, 도데체 돈벌기 척박한 ‘사회과학’ 분야의 출판만을 고집했다. ‘쉽게 팔리지 않으나 오래 팔리는 책’들의 출판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꺾이지 않는 정의의 강처럼 한국사회의 밑바닥을 흐르는 힘의 주체들을 그리는 언론 의병장이 되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와 이윤의 경계선, 의병장과 사업가의 기로에서 쉼 없는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초심을 지켜 나갔고, 마침내 30주년을 넘으면서 故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이르기까지 출판대가로 우뚝 섰다. 그 또한 ‘조지훈 전집’과 ‘지훈상(賞)’, 팔릴 기약 없는 사회과학서 등 ‘반드시 있어야 하나 아무도 하지 않는, 의미 있는 일’에 불쏘시개처럼 돈을 태울 줄도 알고 있다.
이 둘 다 ¡º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밤에도 가야 할 먼 길이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정열, 안목, 집념의 장인정신 없이는 결코 이루지 못할 발군의 업적들이다. 그렇다. 이 책들에는 ‘읽을 때 그뿐인 숱한 처세술,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값진 정신과 가치들이 흥미진진하게 넘쳐나 마치 러브스토리를 읽는 마냥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다가, 무협지를 읽는 듯 두근거리게도 한다.
사업과 직업에 임하는 자세, 미래를 보는 안목과 일을 대하는 열정 등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페이지, 페이지마다 그득하다. 최소한 글쟁이나 책 만들기, 광고, 디자인 같은 창의적 전문가를 꿈꾸거나 이제 막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두 사람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고동치면서, ‘이처럼만 하면 안될 게 없겠다’는 섬광으로 눈이 불끈, 연필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자신을 새삼 발견하게 될 터이다.
더불어 팁하나 더. 진정한 블루오션은 전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미 싹수가 터서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분야라도 이 두 사람처럼 뚝심과 신념의 장인정신만 갖춘다면 성공하겠다는 깨우침과 자신감도 얻을 것인 바, 블루오션은 이미 우리들 도처에 널려 있었던 것이다.
글 자유기고가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