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검찰수사가 죄다 무슨 묵은지야?’

박지영 기자 기자  2010.11.26 15:20:4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고달픈 시집살이 얘기만 아니다. 대한민국 검찰들도 ‘며느리 신세’긴 마찬가지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아 보인다. 대통령(시어머니) 임기가 5년이라는 점을 가만하면 말이다.

재계에 매머드급 사정태풍이 몰아쳤다. 사정권 안에 든 기업은 신한, 한화, 태광, C&, 오리온, 삼성전자 등 모두 6곳. 여기에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들까지 더하면 사정 범위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비록 정기조사라고는 하지만) 국세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곳은 제일기획, SK텔레콤, LG유플러스, 신세계푸드, 롯데건설, GS리테일, 아주캐피탈 등이다. 
 
문제는 검찰의 사정칼날에 숨겨진 진의다. 현 정부는 극구 부인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번 검찰수사는 이명박 정부 임기반환점을 돌면서 여론몰이에 나선 정황이 짙다. 태광그룹만 놓고 봐도 그렇다.

검찰은 과연 태광 비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에 맞춰진다. 지난해 4월 기자는 일면식도 없던 이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상대는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찰수사관이었다. 용건인 즉, 그해 1월 초 보도된 ‘태광일가 천안방송 지분편취 의혹 미스터리 추적’ 기사에 나온 내부문건을 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4월20일 점심께 서울 중구 한 설렁탕집에서 수사관을 만났다. 그는 “위에서 ‘태광 관련 비리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며 기자가 알고 있는 선에서 수사협조를 요청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미리 준비해간 A4 용지 수백장에 이르는 태광 관련 문건을 내줬다. 문서 안에는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부터 천안유선방송 지분편취 의혹, 전 정권 로비의혹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분량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거듭나도 태광그룹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10월 갑자기 태광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2008년 말 기자가 보도했던, 2009년 초 수사관에게 넘겼던 문건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번 사태의 추이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갑자기 KBS 2TV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 등장하는 ‘동혁이형’이 생각났다. 그가 만일 이 사실을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혹 ‘검찰의 기업 범법행위 손보기가 1~2년 묵혀야 맛을 내는 묵은지야. 왜 함부로 숙성시켜’라고 일침을 가하진 않았을까. 

   
물론, 검찰도 뒤늦게 수사에 들어간 (우리 국민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하지만 이번 대기업 사정수사를 두고 ‘재계 길들이기다’ ‘MB정부 레임덕(권력누수) 차단용이다’란 말이 나도는 것 또한 (검찰과 정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만 알아줬으면 한다. 
    
다만 검찰은 국민에게 한 가지 약속해야할 게 있다. 어차피 ‘나쁜 기업’ 색출에 나섰다면 어떻게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건이 ‘묵은지 수사’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