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의 중간자적 위치를 잘 활용해 금융위기 이후 재편될 세계 경제의 해법을 모색할 것을 요구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전 총리가 퇴임 후 첫 말문을 열었다. |
이 전 총재는 23일 63빌딩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2011 신한금융투자 리서치 포럼’에서 ‘위기 이후 경제 금융환경’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이 같이 밝히고 향후 세계정부 탄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예측했다.
이 전 총재는 먼저 세계 금융위기 발발 원인으로 빨라진 경제 발전 속도 대비 떨어진 시스템 제어 능력을 꼽았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의 뿌리가 인간 탐욕에서 비롯됐다고들 하지만 이는 예전부터 존재했다. 인간의 탐욕을 통제할 제어장치가 약화된 것이 지난해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다”고 분석했다.
제어장치가 약해진 원인으로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개인 대 개인이 거래했던 상업금융체제를 벗어나 시장 거래 방식으로 바뀐 것과 신용정보를 자유롭게 팔게 된 환경을 들었다. 또 △달러화의 기축통화기능 상실 △금리중심 통화정책의 영향력 약화 △기업 내부 자율규제 실패 등 사회 제도도 원인으로 꼽았다.
이 전 총재는 “금융 위기 이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제 구동능력과 제어능력이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세계에 통용되는 통화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세계정부를 제시했다. 아울러 한국은 세계 속에서 중간자적 입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G20에서 환율정책과 국제금융기구의 지배구조 변경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는 다수 국가가 합의점을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 모두 기존에 나온 아이디어다”고 의미를 제한했다. 또 “국제금융기구 지배구조가 변경됐다고는 하나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9명 이상 다수가 참가하는 의사결정은 여전히 합의가 어렵다는 점에서 세계를 포괄할 세계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전 총재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중간자적 입장’으로 풀이했다. “한국이 선진국도 아니고 개발도상국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긴 하지만 개도국에는 한국만한 롤모델이 없다”며 “개도국에 큰 영향력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을 활용해 세계 선진국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세계경제가 하나의 지구촌이 돼 가고 있으므로 내 나라만을 위하지 않고 ‘우리’를 생각해야 살아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양 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없다’는 표현을 인용하며 향후 경제 전망이 밝지 않아도 때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친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번 강연은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가 퇴임 후 첫 공식석상에 섰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신한금융투자는 임기가 끝나면 공식적 발언을 자제하곤 했던 한국은행 총재 사이 관례를 깨고 이 전 총재를 포럼에 초청하기 위해 삼고초려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