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 근래 크게 성장한 중국의 대형 가전 회사의 하이얼의 유연한 대응 능력을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하이얼의 현장 수리 기사들은 세탁기 고장 수리를 위해 지방에 나간 경우, 기기 안에 채소 찌꺼기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발견, 보고했다. 지방 고객들은 채소를 씻을 때도 세탁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하이얼 경영진은 정상적인 세탁기 사용법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면서도, 생산부서에 세탁기로 채소도 씻을 수 있게 만들라고 주문했다. 하이얼 엔지니어들은 야채 껍질이 잘 빠지도록 배수관을 넓히고 필터의 구멍을 크게 만들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2. 인도에 진출한 현대차는 현지 시장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한 일본계 합작사의 벽은 물론, 터번을 쓰는 인도인들의 특이한 상황에도 난감함을 느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인도 사람들의 생활에 맞게 인도 시장용 차에 한정, 차 바닥 높이를 높이고 터번을 쓴 이들을 위해 내부 높이도 조정하는 ‘현장 판단’을 내렸다. 현대차는 이런 방식으로 도저히 가망이 없을 것 같던 인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성공, 지금은 20%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당초 80%에 달하던 마르티스즈키의 점유율을 50%로 끌어내렸다.
삼성이 그룹의 콘트롤타워 시스템을 복원다고 해 화제다. 2년여만의 이번 조치에 삼성은 물론 세인들이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삼성의 이번 그룹 시스템 복원은 과거 삼성 전략기획실이 가졌던 어두운 이미지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 같은 그룹 총괄 조직이 최근 승진이 예상되고 있는 곧 개막될 이재용 부사장 시대를 지원하는 쪽으로 역할론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기우인 셈이다.
하지만 삼성 일각에서는 이보다는 신성장 동력(신수종 사업)을 개별사 차원 도모가 아닌 그룹이 직접 챙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이번 밑그림을 설명하는 분위기다. 아울러, 그간 재무전문가에 비해 기획통이 상대적으로 배척되었던 기류를 일신, 기획전문가들의 전략적 사고가 중시되는 방향으로 그룹 방향이 변화하는 데 필요한 결단으로 이번 일을 풀이하는 지적도 있다.
홍보를 맡고 있는 이인용 부사장이 과거 우대받았던 층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점을 언급하는 등 비장한 각오에 굳이 방점을 찍은 것도 이 같은 해석에 한층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일단 삼성 쪽의 긍정적이고 순수한 의도를 인정한다면, 이번 인사 구상과 조직 구조에 대한 결단은 승계 구도라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책임지는 기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 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에 그룹 조직을 복원하는 것이 신수종 사업을 보다 잘 챙기기 위해서라는 대목은, 근래 세계 경영 문제에서 ‘전략적 민첩성(strategic agility)’과 같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 운영을 강조한 이브 도즈 교수 계열과, 핵심 역량을 강조하는 게리 해멀 교수 등의 진영간 설전에서 삼성이 민첩하고 고객 지향적, 시장 지향성, 시대 조류에 빠르게 대응하기로 용단을 내렸다는 뜻으로 읽힌다. ‘관리의 삼성’, 재무통이 득세하는 삼성, 과거 이건희 회장이 한때 각종 논란 끝에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어느 샌가 고착됐던, 안 풀리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욱일승천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삼성의 틀을 과감히 깨자며 패기를 내보인 것이다.
한때 삼성은 ‘수출입국’ 신화의 시대에 상사맨들을 세계에 파견해 한국을 심던 선봉장이었으며, IMF 관리 체제 무렵에도 애니콜 신화를 쓰면서 한국 경제를 다이내믹하게 이끌어 온 대표 주자였다. 그러던 삼성이 어느덧 ‘관리의 삼성’이니 하는 통제(control)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미지를 덧입었던 것은 삼성 자체적인 고민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의 부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