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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타블로의 길 걷는 현정은

임혜현 기자 기자  2010.11.19 18: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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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먼저 떠나 보낸 남편의 선영 앞에서 고개를 숙인 그녀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가리켜 지난한 현대건설 인수전을 치러낸 감회가 북받쳤던 듯 하다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현재 우리 나라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경영인이다. 그룹 순위로 보나, 우여곡절 끝에 넘어간 현대건설을 다시 사들인 것이나, 오랫동안 경영권 분쟁을 그것도 다름 아닌 ‘시댁이자 아이들의 본가인’ 범현대가와 치러낸 뚝심의 여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가장 좋은 시절은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소식으로부터 불과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현대그룹의 기린아이자, 많은 돈을 벌어들여 그룹이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온 든든한 모범생, 현대증권의 노조가 그녀의 현대건설 인수 시도에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노조가 19일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자금에 공식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프랑스發 자금(1조 원대)이 성격이 불분명하므로, 결국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란 투기자본을 끌어들인 채권단 내지 국가경제 우롱에 불과하다는 성토가 다름 아닌 그룹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온 셈이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갖는다.

첫째, 이같은 현대증권 노조 반발은 소액주주와 연대한 회사채 발행 저지 등으로 치달을 공산이 커 현대그룹 기본 구상에 전체적으로 균열이 갈 수 있다. 현대그룹은 이미 계열사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라 현대증권 노조의 이 같은 반발을 버티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현대상선이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어 4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결의했고, 자사주 신탁 해지를 통해 현금 3778억 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부산신항만 주식 2000억 원어치를 자산유동화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11월 10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 등 연쇄적으로 움직이는 자금 집행 도에서 현대증권 노조의 반발은 다른 계열사들의 자금 동원 협력 구상에서 이탈 내지 태업 가능성을 높인다. 

둘째, 이같은 현대증권 노조의 문제 제기는, 현대그룹 오너인 현 회장 이미지를 ‘타블로 학력 논쟁’ 수준으로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같은 논란을 보면, 현 회장을 보필하는 현대그룹 본부의 대응이 오히려 문제 심각성을 더 키웠다는 점에서 고소를 금할 수 없다.

현대증권 노조의 19일 성명에 이례적으로 빠르게 반박문이 나왔다. 그런데 개별사 노조에 반을 보인 것은 개별사(현대증권)이 아닌, 현대그룹이라는 점이 두드러지며 그 대응 내용이란 게 결국 “반발하지 마라. 어차피 채권단이나 매각주간사 아니면 토를 달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윽박지르기선에 머물고 있다.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노조의 19일 성명에 이례적으로 빠르게 맞대응을 하고 나선 점은 비판 대상이 되고 있을 뿐더러 현대의 오랜 기업 역사에서 가장 추한 대목인 현대중공업 사태(1989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언론은 현대중공업 사태가 커진 것에 대해 △노-노간 갈등(현대중공업 직원 간에도 파업관련 갈등이 컸다는 뜻-편집자 주) △해묵은 노사갈등 등뿐만 아니라 △회사 측의 계산된 양보 불허를 같이 꼽고 있다(1989년3월30일 매일경제).

즉 사과와 적절한 문제 개선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강성 노동운동으로 치닫게 한 것은 회사 측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노동자를 협상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은 후진성 문제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태 뿐만 아니라 근래 유명세를 치른 타블로 학력 논란마저도 현 회장 얼굴에 겹쳐보이게 하는 현대그룹측 대응이다. 타블로 학력 논란은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마녀사냥식 인터넷문화였지만, 다수의 안티와 의혹을 양산하도록 한 데에는 타블로측의 미진한 대응도 원인이 없지 않았다. 가장 적당한 직접적으로 졸업증명서를 떼고 논문(내지 논문없이 이수했음을 방증할 자료) 자료 인증으로(예컨대 도올 선생은 학력 논란에 이렇게 초기에 적절히 적극적으로 불을 껐다) 문제를 푸는 대신 에둘러 가는 방법을 택해 사태를 키운 감이 없지 않았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계열사 노조의 반발에 강한 공세를 취함으로써, 결국 현대중공업 사태 당시의 후진적 노사관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타블로 학력 논란 때처럼 공격방어방법 구사의 실패라는 우려마저도 사고 있는 게 아닐까. 현대그룹은 프랑스에서 들어오기로 했다는 1조원대 자금 속성에 대해, 시장이나 언론에 대해서는 몰라도 뼈빠지게 일해온 현대그룹 직원(노조원)들에게만큼은 조곤조곤 설명할 의향이 정녕 없는가? 네티즌 다수의 (쓸데없는) 궁금증에 왜 굳이 답하여야 하냐는 식으로 문제를 키우다 결국 크게 상처를 입었던 타블로의 불행한 전례를 현 회장은 답습하지 말았으면 한다. 타블로는 네티즌의 모든 궁금증에 답해줄 의무가 없을지 몰라도, 현 회장은 자기 자식과도 같은 직원들의 문의와 불만에 답할 의무와 신성한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