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공기관 행정인턴제가 사실상 폐지된 가운데 기업 인턴제 실효성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인턴제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대책 차원으로 마련됐지만 정규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인턴은 인턴일 뿐’이라는 자조가 만연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를 내걸고 인턴들에게 산더미 같은 잡무 처리와 과도한 영업 실적을 요구하고 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에 해당하는 청년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턴’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인턴으로 시작해 정규직으로’라는 희망을 가지지만, 이런 꿈을 실현시키는 청년은 극히 소수다. 수개월 동안 기업의 잡일만 실컷 하다 계약만기 후 퇴사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턴은 그야말로 인턴일뿐이다.
서울 소재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심성우(가명‧28)씨는 “전공이나 영어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스펙이 약한데 아무래도 취업은 힘들 것 같다”고 푸념했다. 심씨가 올해 초 한 시중은행의 인턴으로 일했을 때만 하더라도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 은행직원으로 뽑힐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컸다.
눈을 부릅뜨고 일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은행직원이 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심씨는 “돌이켜보면 인턴으로 일했던 그 시간에 영어공부에 매진했으면 스펙이라도 좋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인턴 시간은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사진= 지난 9월 명지대학교에서 열린 인턴취업 설명회 모습. |
서울의 한 로펌에 재직 중인 최보람(가명·24)씨는 올해 초 6개월간 특허청에서 인턴직으로 일했다. 최씨는 “정규직 전환은 정말 소수에 불과했는데 인턴들은 정규직 꿈을 가지고 쥐꼬리 월급(약 70만원)을 받으며 정말 산더미같은 일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은 지난해 세일즈 인턴제를 실시하면서 인턴 100명을 채용했다. 은행 측은 인턴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전제하면서 영업을 시켰고 실적을 요구했다. 인턴들을 돈벌이 현장으로 내몬 것이다. 이 은행의 한 영업점엔 71명이 뽑혔지만 이중 48명이 인턴을 마쳤고, 이중 5명만 이 은행에 채용됐다. 66명의 인턴들은 이 은행을 위해 영업만 실컷 했을 뿐이다.
◆직장인 아닌 구직자 신분
지난 6월 기획재정부은 2010년 공공기관 청년인턴 운영실적을 발표했다. 21개 공기업, 79개 준정부기관, 184개 기타공공기관은 총 7100명 청년인턴을 채용했다.(2010년 5월말기준) 하지만 인턴들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는 162명에 불과했다.
한 구직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자신은 구직자’라고 생각하는 인턴은 77.8%였다. 또 정규직 전환 조건 없이 근무하는 인턴은 93.3%나 됐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일자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턴제는 기업이 대학 3‧4학년을 현장실습 후 정식사원으로 채용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1984년 LG그룹을 선두로 실시됐고 현재 거의 모든 대기업들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인턴직원들 두고 있다. 행정인턴제는 2009년 직장체험 및 취업지원 등을 통해 구직 청년들의 취업역량 제고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현재는 폐지된 상태다.
정부나 기업의 입장에선, 인턴제는 적합한 인재인지 여부를 미리 검증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값 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정부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갈수록 인턴제를 선호하는 추세다.
하지만 정작 인턴 당사자의 입장에선 문제가 다르다. 인턴 생활이 끝나는 동시에 곧바로 백수, 구직자 신세가 되기 때문에 “인턴 할 시간에 영어점수나 자격증 따는 데 열중하는 게 훨씬 낫다”는 하소연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공기업의 경우 인턴의 정규직의 전환이 사실상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기 수준이다 보니 공기업인턴제는 진작에 폐지됐다. 기업은 공기업보다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정규직 채용이 까다롭고 어렵긴 매한가지여서 인턴은 ‘인턴계급’을 벗어나기가 사실상 어렵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기업들이 인건비를 아끼려고 대학 졸업생 대신에 인턴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청년실업 해소에도, 기업 입장에도 마이너스 요인”이라며 “인턴제는 본래 취지에 맞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