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자는 서울의 한 대학교 동문회관 안에 입점한 유명 A은행 지점에서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은행 앞에 놓인 스탠드형 간판에는 인기배우 이민호씨의 사진이 붙어있다. 하지만 이씨는 광고나 홍보를 위해 A은행과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명백한 초상권침해에 해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씨는 지난해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역으로 출현해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다. 올해에도 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통해 인기와 입지를 굳히는 등 브라운관에서 맹활약 중이다.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고객을 위한 선물이나 전단지 제작은 보통 지점 차원에서 과장 이상 지점장까지의 선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대학교 A은행지점의 경우 학생증카드를 모집하면서 홍보용 ‘학생증 증명사진’ 샘플에 이씨의 얼굴을 삽입했다. 이씨가 해당 학교의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씨는 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연예계 소식에 밝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씨가 이 학교 학생인 것으로 충분히 오인할 만 했다.
기자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이씨 소속사는 깜짝 놀라며 대응 준비에 착수했다.
이씨 소속사 관계자는 “홍보물 제작에 (이씨의) 사진이 어느 정도 사용됐는지는 확인을 안 해서 알 수 없지만 단순한 사진이라도 소속사의 동의 없이 사용했다면 초상권침해의 심각성 여부를 판단해 대응방침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자영업자 등이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이씨의 사진을 불법으로 사용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국내 유명 은행에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소속사는 황당함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초상권침해와 관련해 ‘C은행은 피해자 D씨에게 보상액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 사건이 있었다. D씨는 자신의 사진이 계약기간을 넘겨 광고에 사용되고 있다며 C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는 ‘C은행은 D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강제조정한 바 있다.
이씨 소속사가 A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심각한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권리(초상권)를 조심성 없이 사용한 이곳 지점은 고객의 돈을 만지는데도 ‘알아서 해석해가면서’ 처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너무 비약된 것일까.
문제가 된 A은행지점의 부지점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홍보용 샘플 사진에 이민호씨가 등장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상권침해가 된 줄은 몰랐다”며 “회수하겠다”고 말했다.
거대 금융사에게 초상권침해 소송에 따른 배상금액 수백만원은 ‘푼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조심성 없는 불법행위는 돈으로 책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성과 신용은 금융기관의 생명이다. 자기 생명에 흠집 내는 일은 혼신을 다해 피해야 한다.
전남주 기자 / 프라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