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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은 겨울의 문턱에서도 푸르렀다

전남 여수의 오동도

고연실 기자  2010.11.12 01: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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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시간은 날개를 달았는지, 아주 빠르게 훨훨 날아간다. 분명 1월 1일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1월이라니! 흘러가는 시간 잡고 싶지만 잡힐 리도 없고. 올해 초에 생각했던대로, 마음 먹은 것처럼 나는 제대로 달려오긴 한 걸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미련과 회한으로 가득할 11월. 세상 모든 것은 변해 계절도 바뀌는데, 아침 기온이 0도를 맴도는 이 맘 때에 섬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은행잎이 길거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가지는 점점 앙상해지지만, 왠지 섬만큼은 더 푸른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찾은 오동도.

   
오동도 전설비
멀리서 보면 마치 오동나무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빽빽히 들어서있다고 해서 오동도라 불리는 섬. 한 때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신혼 여행 1번지이기도 한 곳이다. 오동도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름대로 오동나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오동도에는 주인공인 오동나무는 거의 없고, 동백과 신이대(시누대)로 가득하다.

산이든 바다든 어느 곳이나 전설은 있긴 마련이다.  오동도 역시 이름과 관련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고려 공민왕때 신돈은 전라도라는 전(全)자가 사람인(人)자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있고, 오동도라는 곳 조차 임금을 상징하는 새인 봉황이 드나들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이 봉황의 출입을 막기 위해 오동도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다는 이야기때문일까? 정말 오동도에는 오동나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뭇잎이 마치 손처럼 여덟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 팔손이
오동나무는 없지만 섬 곳곳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초록 잎이 무성한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벌, 나비들이 기피하는 나무가 오동도에 들어서자마자들어온다. 추운 겨울날에도 쉰내를 풍기기에 파리가 앉았음 앉지, 벌과 나비는 절대 앉지 않은 슬픔을 갖고 있는 이 나무는 바로 팔손이다.

더불어 오동도를 아름답게 해주는 나무는 동백나무. 동백꽃하면 오동도를 떠올릴 정도로 동백나무는 오동도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역시나 가장 많은 건 동백나무이며 2위는 후박나무인데, 15m까지 자라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나무가 많기도 하고,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있어서 오동도의 여름은 참으로 시원하다. 겨울날에는 거센 바다바람이 불어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하지만 나무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다바람은 나쁜 느낌은 아니다.

   
신이대나무(시누대)

   
 

탁 트인 바다, 기암괴석 절벽을 만날 수 있는 오동도의 명소. 큰 선박을 비롯해서 작은 배까지 바다에 동동 떠 있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시퍼런 바닷물을 보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에 아찔하기도 하지만 짭쪼롬한 바다내음을 바로 느낄 수 있어서, 절벽과 함께 절경을 이루는 나무들도 같이 볼 수 있어서 이곳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나무데크 산책로, 왼쪽에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펼쳐진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아찔한 절벽

걷다보니 어디서 아주머니들의 "까르르" 웃음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소리를 따라 멈춘 곳에는 남성의 두 다리와 성기까지 닮은 모습의 후박나무가 눈에 띈다.  방금 사귄 연인들이 본다면 얼굴을 붉힐 것만 같은 대범한 나무.

   
오동도의 남근목
손을 나무에 갖다대보는 짖궂은 아주머니들까지, 이 나무를 보고 난 후의 반응은 정말 다양하다. 특히나 이 나무에 손을 갖다 대면 예쁜 아이를 얻을 수 있다는 설도 있다.

나무 스스로의 치유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나무 스스로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상처가 난 곳에 이렇게 껍질을 두텁게 두텁게 만들어다보니 모양이 이리 되었을텐데... 어쨌든 이 후박나무는 이곳에서 부부나 연인들에게나 인기 만점의 나무가 되었다. 
 
   
돌탑
나무로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보면 돌탑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목적을 갖고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오동도를 다녀간 사람들이 오며가며 하나, 둘 돌을 쌓다보니 어느새 탑이 되었다. 이리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안은 나무의 심정은 어떨까? 나도 살포시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놔본다.

   
신이대터널
오동도를 걸으면서 신이대나무와 너무 쉽게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어딜가도 대나무였고, 이렇게 대나무 스스로 만들어낸 터널에서 햇빛은 간간히 들어오며 자연 조명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이대나무는 터널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무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화살의 재료로 쓰였다. 곧고 마디 사이가 길고, 키도 길게 자라기에 발로도 엮을 수 있었다.

   
동백섬 오동도의 동백꽃 그림 가로등

   
연인의 길

그렇게 많은 대나무 사이에 다시 길 하나가 나 있다. 일반 산책로가 아닌 연인들이 걸으면 좋을 길이다. 가로등도 없고, 대나무만 우거진 곳에서 연인의 길이라? 물론 혼자 걸으면 무섭겠지만, 둘이 걸으면 무섭지 않을 길, 특히나 연인들이 걸으면 분위기 잡기에는 더더욱 좋을 길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오동도 등대

어느덧 발길은 오동도 정상에 다다랐다. 털머위가 노랗게 피어나고 있었고, 하늘은 바다만큼이나 푸르렀다. 섬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등대는 지난 1952년 처음 불을 밝혔는데, 2층에는 전시실이 마련돼 있고, 등대와 바다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하여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등대 중에서도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는 오동도 등대는 손쉽게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여수, 남해, 하동 등 수려한 남해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사람은 괴로울 때, 누군가를 잊어야 할 때, 어떤 결심을 할 때 바다를 찾는다고 하질 않는가.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그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다시 잡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동도 등대 전망대 내부

   
오동도 앞 바다

오동도 등대를 구경하고, 다시 산책로를 가로질러 항으로 내려왔다. 저 멀리 끝으로는 뭍과 연결된 방파제가 보인다. 오동도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지만 방파제를 통해 사람도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오동도에 사람이 살면서 유인도가 되었지만, 통로역할을 한 방파제는 쌀 수탈을 목적으로 1935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오동도로 들어오는 방파제 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안에 들어서 사랑을 받고 있지만서도 한 때는 아픔을 갖기도 한 길이었던 것이다.

   
햇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이는 바닷물

   
음악분수

연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된 오동도. 음악분수광장에는 신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시원한 물줄기가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 뿜어냈다. 그 뒤로는 아기자기한 동백열차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동백열차

겨울이 오는 문턱, 11월. 섬은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며 초록의 옷을 입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여수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오며 가며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말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곳의 섬과 같이, 언제나 푸른잎인 동백나무와 같이 굳건하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람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백나무는 초록과 붉은옷 그렇게 두가지의 색을 갖지만 사람은 백지와 같아서 여러 색깔을 담을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섬은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은 두 다리와 두근거리는 심장이 있어서 어디든 떠날 수 있으며 느낄 수도 있다.

2, 3월이면 단풍보다도 더 붉게 오동도는 동백꽃으로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이곳을 찾아오고 싶다. 그때가 되면 "그 섬은 불타오르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옳겠지?


[오동도 등대]
위 치 : 전남 여수시 수정동 산 1-7번지
문의/안내 : 오동도항로표지관리소 061-662-3999
이용시간 : 평일 9시부터 6시까지(월요일 -보수일 휴관)

※ 여행 칼럼니스트 고연실은,
   
 
민영방송에서 구성작가로 활동해왔으며 한때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일했다. 현재는 여행이 무작정 좋아,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비경들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