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건설 인수전의 저울이 드디어 기울기 시작했다. 11일 현대그룹을 도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던 독일 M+W 그룹이 발을 뺄 것으로 알려지면서, 15일 이전에 이미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간 현대건설 쟁탈전은 사실상 답이 나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으로서는 그룹 적통성을 이어받은(받았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현대의 사실상 시발점인 현대건설을 인수하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는 별개로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주식을 경쟁자인 현대차그룹에 넘기게 되면, 현대그룹 경영권 방어에 치명적인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점 역시도 이번 인수전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1일 기준 현대상선이 가파른 주가 상승(11일 장마감 결과 전일 대비 7.96% 오른 4만6750원)을 보인 한편 앞으로도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상당한 상승 가능성을 기대하는 흐름이 지속될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같은 사정과 함께 그간 현대상선 등 계열사들이 현대건설 인수라는 현대건설 경영권 방어 즉 현정은-정지이 일가의 목표에 차출됐던 피로감을 호소,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 등도 겹쳐 볼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 상선 주가 상승, 일반주주들 이미 현정은-정지이와 이해관계 갈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중공업그룹의 보유 지분 25.5%와 합쳐 범(汎)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이 39%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경우 지분 격차를 최대한 유리하게 구성
<사진=기념 식수를 위해 삽질을 하고 있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
그런데, 현대그룹이 사실상 현대건설 인수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짙어지는 현재의 흐름은(예컨대 M+W 그룹 관련 뉴스), 현대상선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경우 그 파장은 현대그룹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으로 이어지고 다시금 현대상선 주식 매집에 대한 예측을 강하게 하고 있다(예를 들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시작해 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현대건설을 결국 품에 안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이같은 차석책으로서의 방어가 필수적이다. 현대상선이 주식을 상당량 갖고 있는 현대증권의 경영권도 현대상선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점도 과거부터 포인트로 꼽혀 왔다.
◆일반투자자 보유 주식 의외로 무용지물? 당분간 랠리 요소로는 충분
문제는 현대상선의 주식 매집이 과연 현 회장 등 현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 대책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없지 않다는 데 있다. 즉, 일반주주들이 보유하는 주식에 대한 평가는 현정은-정지이 일가의 경영권 유지 여부에 대한 실질적 기여도보다는 어느 정도 부풀려진 가치로 현대상선 주식이 가격을 형성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볼 여지가 있어, 오너 일가의 속사정과는 달리 일반 주주들로서는 연말까지 상당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현대상선 케이스는 오너 일가와 기업의 운명이나 가치는 별개라는 냉엄한 현실에 익숙치 않은 한국적 자본주의 사정에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국면에서 드디어 오너 일가와 일반주주간의 연대감은 붕괴한다고 볼 것이어서, 그간 여러 번 범현대가와 분쟁을 벌일 때마다 국민정서를 든든한 우군으로 삼아온 현대그룹으로서는 전략의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할 수 있다.
◆ 계열사 쥐어짜기로 불만 표출, 엔론 사태와 흡사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실탄’을 마련했던 점, 그리고 이 와중에서 현대그룹 계열사 직원들의 불만을 산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현정은 체제는 물론 이후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정지이 체제에도 두고두고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근래, 이사회에서 주주배정 방식으로 총 3967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결의했던 바 있다. 보통주 1020만주를 발행하며, 주주들은 다음달 29일 보유 주식을 기준으로 1주당 0.05778962주를 배정받게 된다는 안이었다.
현대상선은 또 이날 계열사인 현대부산신항만 주식 199만9천999주를 2천억원에 처분키로 했다고 공시하는 등 핵심자산을 파는 데에도 골몰했다. 선박을 판매후 재리스 형태로 매각해 8000억원에서 1조원을 추가 조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알려진 점도 문제다. 현대상선은 또한 자사주 매입 신탁 계약 4건을 해지했다.
<사진=현대그룹이 실탄 마련을 위해 매각을 추진한 부산신항만 시설(사진제공: 현대상선> |
계열사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동원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늦가을에만 1000억원, 7월에는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현대증권 같은 경우는 사내에 쌓아둔 이익잉여금도 가장 많은 알짜기업이자 효자회사. 하지만 실탄 마련이라는 대의로인해, 직원들에게 작년도에 성과급을 50%만 지급하는 등으로 서운함을 사 왔다.
이런 점은 현대증권 노조가 지난 10월 29일 대대적인 시위를 통해 사실상 그룹 수뇌부의 방침에 반기를 들면서 표면화됐다. 더욱이 이 시위에서 현대증권 노조가 드러낸 사항은 단기적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장기적인 불신과 앙금으로 남을 수 있어 보여 더 문제라고해석된다.
즉, 노조가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대응 방법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사실상 대부분 녹아들어 있다는 것. 현대증권 노조는 그룹이 현대증권을 쥐어짜 현대건설 인수자금 마련을 강행할 경우, 우리사주조합 지분 0.57%를 활용해 외부의 소액주주들과도 연대하는 활동을 전개할 방침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사진=현대증권 노조의 반발이 극심하다. 향후 현정은 체제 이후 정지이 체제가 들어서도 상당한 신뢰감 재구축에 유무형의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다(2010년 10월 29일 현대건설 인수 추진 반대 시위현장).> |
그런데, 부도덕한 경영으로 좌초한 대표적 기업인 미국 엔론을 보면, 자기 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종업원(직원)들을 도외시한 기업이 사회적 지탄을 면키 어려움을 알 수 있다.
2002년 1월 권위있는 경제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엔론사태의 교훈’이라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 보도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기업의 종업원들은 자사주로 퇴직연금저축을 할 경우 퇴직후 생활이 보장될 것이라든지 또는 더 큰 돈을 만지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엔론 종업원들은 특히 회사가 퇴직연금계정에 엔론주식을 포함시키도록 함으로써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
그런데, 현대증권 노조원들(직원들)의 이번 반발에서, 현대그룹과 현대증권은 이미 우리사주에 대한 배려없이 기업 가치를 무리하게 떨어뜨리는 인수전 강행을 하려는 자들이라는 공감대가 퍼진 것이 확인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는 또다른 교훈 중 하나로, 엔론이 지나치게 정보 등 무형자산에만 투자를 한 나머지 필요한 경우 현금화가 가능한 자금조달이 가능한 발전소나 송유관 등 유형자산에의 투자를 게을리한 것은 실책이었다고 하고 있는데, 이 엔론의 과오 역시 현대상선의 자산 매각과 선박을 리스로 돌리는 일을 너무 쉽게 처리하는 등과 겹쳐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은 앞으로 현대건설 인수가 완전히 실패로 끝나는 경우 후유증 해소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할 전망이다. 일단 현재상선 주식 매집을 통한 경영권 방어에 열을 올리는 외에도, 주주들과 직원들의 마음이 떠난 부분을 수습하는 무형적 가치 증진에 장기간 매달려야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고 하겠다. 엔론처럼 거대한 기업군을 일궜던 현대그룹이 엔론 침몰과는 다른 수순을 밟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