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41년 6월 영국 당국은 ‘사회보험 및 관련 사업에 관한 각 부처의 연락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위원회가 내놓은 성과가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다.
훗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회자되는 영국 복지 제도의 기틀을 닦은 것이다. 정식 명칭은 ‘사회보험 및 관련서비스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Reported by William Beveridge’.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던 그 무렵 영국의 여러 제도의 구조나 그 효율성을 재점검하고 필요한 개선책을 권고하는 안건이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전란이 아직 한창이던 1940년대에 진행됐다. 영국 본토와 런던 시내에 독일 폭격기가 몰려와 사투를 벌인 ‘배틀 오브 브리튼’으로부터 따져도 불과 1년여가 흐른 시기다.
이 같은 생존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 베버리지는 현대사회에서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사회문제의 5대 악으로서 결핍·질병·나태·무지·불결을 들고, 이 가운데 사회보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궁핍 해소라는 점을 지적, 국가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상을 폈다.
더욱이 이 전란의 시기는 보수적인 처칠 내각이 정권을 쥐고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영국병’의 근원이라는 둥, 2차 대전 이후 들어선 노동당 정권이 이 전쟁을 치르고 사회적 뇌물로 이 제도를 닦았다느니 하여 보수적 경제관을 가진 이들의 비판이 많았지만, 영국은 전시에조차도 이 같은 국민 복리를 높이는 데 당파를 가리지 않고 고민을 계속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최근 흥미로운 정치인들의 발언 소식을 몇 가지 접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안정을 향한 우리의 길을 수출한다’는 제목의 글을 직접 기고했다는 소식과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가 국회의원들에 대한 대대적 사정 작업에 대해 내놓은 발언이 그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방문 중 이명박 대통령과 수출을 수백억달러 늘리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는 FTA의 타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이번 협상에 깊숙이 개입할 뜻을 분명히 했으며 “내가 미국의 자동차업계와 근로자들을 포함한 미국 수출업계의 이익을 대변” 등의 표현을 노골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세일즈 외교라 할지 모르나, 저명일간지 워싱턴포스트조차도 “미국 자동차와 쇠고기 업계에 충분할 만큼 한국 시장을 개방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회 내 비판론이 있지만 이런 비판들은 과장된 것”이라고 미국 내의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이기주의를 경계하고 있음을 볼 때 오바마의 발언은 중간선거 패배 이후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해 많은 실망을 낳는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로비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한 태도도 오바마의 발언과 같이 ‘왜소한 생각’에 기반한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대표는 7일 밤 열렸던 당·정·청 9인 회동에서 “후원금 계좌는 공개돼 있는데 압수수색까지 할 필요 있느냐”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안형환 대변인이 7일 브리핑을 통해 “검찰이 11명의 의원에게 사전 자료제출을 요구하지도 않고 G20 정상회의라는 국가 대사를 앞둔 상황에서 압수수색을 펼쳐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입장”이라고 말한 것도 안 대표의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국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매우 곤혹스럽다”는 발언도 안상수 체제의 한나라당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획수사니 뭐니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나, 제3자가 아닌 수사 당사자들을 거느린 공적 정당의 책임있는 지휘자, 특히나 막강한 여당의 대표가 수사에 이러저러한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표출하는 것은 또 다른 불공정으로 읽힐 여지가 크고, 여기에 의회정치에 대한 존엄성 등을 감안하기에는 무
결국 표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불길이 더 커지는 것을 막자는 데 골몰하는 왜소한 정치관을 미국과 한국의 거물 정치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아무리 환율전쟁이라고까지 표현되는 경제위기의 시대이고 레임덕 초기의 시점이라고 해도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란 한켠에서도 국가적 대의를 논한 백년지계 정치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