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태광그룹이 △편법증여 △비자금 의혹 △정관계 로비 등 갖가지 혐의로 ‘비리백화점’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각종 의혹들은 고구마줄기처럼 쉼 없이 딸려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과거 티브로드가 한 프로그램공급업자(PP)로부터 돈을 상납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다. 본지가 입수한 문건 등에 따르면 프로그램공급업체 W사는 진헌진 전 티브로드 대표에게 비자금 성격이 짙은 돈을 건넸다. 진 전 대표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최측근이다.
‘비리백화점’ 태광그룹이 비자금 조성에 이어 돈 로비까지 받았다. 본지가 입수한 태광 내부문건에 따르면 비리의혹 중심엔 프로그램공급업체 W사가 있다.
지난 2004년 5월 G씨는 자본금 5억1000만원을 들여 W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문건은 이 회사 실소유주가 티브로드 서부산방송 B사장라고 밝혔다. B사장이 100% 출자하고 대표이사 이름만 빌렸다는 것이다. 대표이사로 기재된 G씨는 B사장 '수족'이었던 K사장 후배다. K사장이 개인사정으로 자신 대신 후배이름을 빌렸다. 티브로드는 국내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로 태광그룹 핵심계열사다.
<사진설명= W사가 티브로드 20개 SO와 프로그램공급계약을 맺었다. 여기에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이름으로 된 계약서도 포함돼 있었다.> |
이와 관련 한 PP사업자는 “W사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신생PP가 그렇게 계약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는 이어 두 회사 간 친분에 대해 설명했다.
“B사장이 서부산방송 지분을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 측에 넘기는 과정에서 ‘못 다한 거래’가 있었죠. 근데 이게 정상적인 지분거래가 아니어서 B사장은 잔금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티브로드는 B사장이 지분을 다 넘긴 후에도 방송사(서부산방송) 대표로 2~3년간 더 있게 했고 B사장이 차명으로 론칭한 W사도 자사 케이블채널(티브로드)에 꽂아줄 수밖에 없었죠”
W사 재정이 빠르게 안정된 데에는 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본지가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W사는 진헌진 티브로드 대표에 수억의 돈을 상납했다. 이 같은 내용은 4장의 지출결의서에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자 가지급금 용도라고 적힌 지출결의서는 모두 4차례에 걸쳐 현금 1억7000만원이 빠져나간 정황이 담겨있다. 특히 지출결의서 한 장에는 ‘태광 관련 현금화 준비 중’이라고 적혀있어 이 돈이 태광에 상납됐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상납대금…2억7000만원+∂?
<사진설명= A4용지 4장 분량의 지출결의서에는 현금 1억7000만원이 가지급금 형식으로 진헌진 전 티브로드 대표에게 전달된 정황이 담겨있다. 특히 한장의 지출결의서에는 태광관련 현금화 준비중이라고 적혀있다.> |
녹취록에는 ‘K사장이 회사 돈 1억원 이상을 인출해 실소유주인 B사장에 전했다’고 명시돼 있다. S씨는 “(K사장에 따르면) B사장이 이를 다시 티브로드 진헌진 대표에게 강남 르네상스 호텔에서 전달했다”고 밝혔다.
결국 총 2억7000만원이 K사장을 통해 B사장에게 전달, 진 전 대표에게 상납된 것으로 보인다.
S씨는 “K사장이 이 금액을 각각 1억5000만원, 1억원, 2000만원 3차례로 나눠 전달했다”고 밝혔다. W사 매각대금 17억원 역시 세금을 제외하고 B사장 측이 전부 가져가 돈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의혹의 핵심, K사장은 누구?
이 같은 내용은 K사장이 B사장을 비롯한 티브로드 측에 불만을 갖고 폭로해 공개됐다.
K사장은 W사 설립 과정에서 개국공신 역할을 했다. 그가 설립 아이디어를 냈고 W사 대표이사직도 본래 그의 자리였다. 개인사정으로 대표이사 직함을 얻지 못했지만 해당업체 사장으로 ‘실세’였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실소유주인 B사장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W사가 28개월 만에 17억원에 매각됐다. B사장은 K사장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방송사가 매각되자 ‘다소 직급이 높은 직원’에 불과했던 그는 금세 거리로 내몰렸다. 티브로드 측도 방송이 매각되기 무섭게 프로그램공급계약을 해지했다. B사장은 매각대금을 쥐고도 ‘현금운반책’등 비자금 상납 중추역할을 했던 자신에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앙심을 품었다. 그리고 덤핑마케팅 때문에 B사장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Y씨와 연대하려고 S씨를 통해 정보를 공유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K사장은 비자금 조성과 상납에 대해 함구하는 대가로 B사장에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B사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에 K사장은 티브로드 L전무를 찾아갔다.
K사장이 B사장과 진헌진 대표 사이 상납이 이뤄졌음을 안다는 사실은 티브로드에 큰 위협이 됐다. 따라서 B사장 대신 티브로드가 K사장에게 금전적 보상을 약속한다. 대신 향후 입을 다물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조건이다.
그러나 티브로드와 B사장이 순순히 돈을 내줄리 만무했다. 티브로드 측은 금액협상 대신 일방적으로 2000만원을 넣고 각서를 안 쓰면 K사장을 횡령·배임혐의로 매장시키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이에 억울함을 느낀 K사장을 비롯, 관계자들은 B사장과 티브로드에 얽힌 비리를 ‘미디어 오늘’에 제보하려고 시도하기에 이른다.
<사진설명= W사 K사장이 진헌진 태광그룹 회장에게 돈로비한 정황이 담긴 A4용지 9장 분량의 녹취록.> |
S씨는 “진 대표가 B사장에게 서부산방송이 진행 중인 소송에서 승소하면 망 공사로 비자금을 조성해 잔금도 치르고 (자신도)나눠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패소하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졌다”며 “진 대표와 B사장이 꾸준히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밥에 그 나물
모든 정황을 감안할 때 W사 B사장과 진 대표는 돈·계약관계로 얽힌 끈끈한 관계로 추정된다. 여기서 궁금점이 생긴다. 진 대표의 상납사실을 이 회장이 몰랐을까 하는 문제다.
이 회장과 진 대표는 대원외고, 서울대 동기다. ‘은둔형 CEO’인 이 회장이 곁에 두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티브로드는 이 회장이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주력하는 미디어 계열사다. 게다가 W사와 계약을 맺었던 20개 SO사업자 명단에도 이 회장 이름은 버젓이 올라있다.
따라서 이 사실을 이 회장이 모를 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진 대표가 수령한 비자금이 이 회장에게까지 전달됐을지, 진 대표 단독행동에서 멈췄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티브로드가 다른 PP들로부터 비자금을 상납 받아왔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이 회장 역시 비자금 비리의혹에 이어 측근 단속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자세한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사건 핵심에 있는 K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진설명= 녹취록에 따르면 W사 K사장은 르네상스 호텔에서 B사장에게 로비금을 전달했고, B사장이 이를 진헌진 전 티브로드 대표에게 전해줬다.> |
이어 “나한테 남은 게 뭐냐. 난 하루 살기도 힘든 실직자가 됐다. 내가 케이블업계에 15년 몸을 담갔는데 결국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다 똑같더라”며 “이미 B사장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태광에 생채기도 안 날 테니 포기하라”고 오히려 기자를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