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농심은 1965년 신춘호 회장이 설립한 롯데공업(주)에서 시작했다. 롯데공업(주)는 설립 당시 라면업계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으나 1971년 ‘소고기라면’을 히트시키며 시장점유율 23%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4년 뒤인 1975년 신제품 ‘농심라면’을 히트시키면서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와 더불어 사원들의 의식 개혁을 꾀하기 위해 사내 ‘농심학교’를 설립하며 ‘농심’으로 새 출발을 준비했다.
농심은 한국인의 기호에 맞춰 1여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신라면’을 선보였다. ‘신라면’은 특유의 매콤하고 얼큰한 국물맛과 쫄깃한 면발로 출시 1년 만에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의 누적 판매개수는 200억봉에 이르며, 국내에서 한 해 판매되는 8억봉의 면발은 지구 둘레를 998바퀴 돌 정도다.
‘고급스러운 매운 맛 라면’이라는 차별화된 컨셉트와 브랜드 전략으로 ‘신라면’은 국내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됐다. 농심, 특히 ‘신라면’의 글로벌화에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시발점이 됐다. 농심이 88서울올림픽 라면공식공급업체로 선정되면서 라면이 세계인들에게 알려졌다.
1991년 라면전용공장을 준공하고 이듬해 그룹 회장제를 도입하면서 미래 경영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1993년에는 포테토칩 및 쌀과자 전용공장을 준공하고 컴퓨터 통합 제조관리 시스템(CIM)을 적용해 종합
농심 신동원 부회장 |
1990년대 중반 동종업계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세계화를 주장하며 상품경쟁력, 판매력 선진화를 추구했다.
세계화의 첫 걸음은 중국 상해공장 준공으로 시작했다. 이후 농산물 가공 및 스프 생산거점인 청도 공장을 준공하면서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우수한 제품개발력, 제조설비와 과학적인 영업력을 앞세워 IMF 외환위기 속에도 성장을 지속해 나갔고 1998년 매출 1조원 달성에 성공했다.
2000년 취임한 신동원 대표이사 부회장은 농심에 도전과 창조 정신을 강조해나갔다. 신 대표는 글로벌 인재 양성, 해외 사업 추진 강화 등에 집중 투자해 국제 수준 품질인증 획득에 큭 기여했다.
신 대표가 중시하는 현장 경영을 펼쳐온 결과 2001년에는 세계적 전략컨설팅 그룹인 베인&컴퍼니사로부터 국내 연간 매출 1조원이상 71개 기업 중 삼성전자, SK텔레콤과 더불어 ‘10년 연속 지속성장 가능 기업’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농심은 중국 시장 진출 이후 LA 공장을 준공하면서 국내 시장 영업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전 세계 70여개 국가에 라면, 스낵 제품을 수출하고 있고 중국, 미국, 동남아 등 해외 생산거점을 마련해 전략적인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농심의 글로벌 전략 핵심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로, 모든 해외 판매 제품은 한국 제품의 맛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을 토대로, 2009년 해외 수출실적은 전년 대비 25.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해외사업 매출목표 3억달러를 초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농심 본사 |
농심은 이 같은 연구개발력을 바탕으로 2009년 매출액 1조8400억원을 달성(전년대비 10.1% 성장)하며, 국내 식품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 농심은 ‘글로벌 농심’, ‘초일류 글로벌 식품기업’이라는 비전을 안고 최고 품질과 기술로 쌓아온 역량을 국제화, 세계화에 집중시켜나간다는 방침이다. 꾸준히 신규 사업 및 해외사업 진출을 전개함으로서 창립 50주년을 맞는 오는 2015년에는 매출 4조원, 경상이익 5000억원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