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를 내리면서 이사직 사퇴 등 거취 문제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감원은 라 전 회장이 신한은행장과 신한은행 부회장으로 재직하던 1991~2000년 직원들에게 차명계좌를 개설해 돈을 관리토록 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위 징계가 최종 확정되면 라 전 회장은 앞으로 4년 동안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신한은행장 재임 시절의 위법 행위가 문제됐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신한지주 등기이사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 황영기 케이스 등 회장·이사직 동반사퇴 전례 부담
지난해 9월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손실로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은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회장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난 바 있다.
이에 따라 위법 사항을 저지른 금융인으로서 이사직에서도 물러나야 하는 게 순리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라 전 회장이 내년 3월 주주총회 전까지는 이사직을 유지하면서, 이사 권한을 넘어서 인사권에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말 설치된 특별위원회에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한 사태가 라응찬 독주 논란에서 불거졌고, 또 뿌리가 대부분 거기에 있다는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더욱이 이같은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 관치 금융과 류시열 체제에 대한 불만 변수
<사진=서울 태평로 신한지주 본사> |
우선 비상근이사 출신인 류시열 대행에 대해, 재일교포 사외이사 4명이 류 대행의 특위 참가 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등 불편한 앙금이 남아있는 점을 보면 오히려 이같은 상황이 라 전 회장 거취 문제를 단순히 정리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풀이다. 이들은 이사회 직후 식사자리를 회피하는 등 류 대행에 불만을 표시해 특위가 제대로 굴러갈지 장담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류 대행에 대한 불만은 특정인에 가깝냐의 여부에도 달려 있지만, 비상 사태를 책임질 여력이 되는가의 의문이 작용한 것이므로 이처럼 복합적인 질문을 푸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류 대행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라 전 회장의 공백을 크게 느끼게 할 수 있고, 구관이 명관이라는 논리를 낳을 수 있다.
금융업계는 이미 신한 사태의 진행에 대해 신관치금융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최고 경영진 3인방이 불명예 퇴진 압박을 받는 상황에, 실제로 라 전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가하는 금융 당국의 철퇴가 이미 모습을 드러냈고 이에 따라 향후 기회가 되면 언제고 관치가 신한지주에 개입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감원 징계를 보면 신상훈 사장이 중징계 대상에서 제외됐을 뿐, 신한 자체에 대한 기관징계 등 이미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신 사장은 라 전 회장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데다, 직무정지 상황이라 힘을 쓰기 어렵고 이백순 행장도 현재 신한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같은 상황은, 내부 출신들이 지배구조 안정에 실패한 만큼 외부 관료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국면으로 흘러갈 공산이 있고, "주인에 의해 회사 운명을 결정한다"는 주식회사의 ABC를 깨고 신관치금융이 파고들 여지를 만들기 쉽다.
신한지주는 더욱이 신한 사태 과정에서 재일 교포들이 들여온 설립 자금에 대해 추궁을 받을 가능성 때문에 이같은 우려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라 전 회장의 존재 필요성이 있다.
수사 등을 모두 피할 수는 없지만, 현재 검찰이 당분간 각종 기업 비자금 사건 등에 대해 속도 조절을 하려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수습을 할 필요가 있고 특위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도 어쨌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할 존재는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라 전 회장 징계 수위 발표를 전후해서 나온 신한지주와 신한은행의 징계 대상자가 상당히 줄어든 것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감원은 라 전 회장을 포함한 신한은행 전·현직 임직원 42명에 대한 징계를 통보했지만 실제 징계 대상으로 확정된 것은 26명뿐이다. 이 정도면 신한 사태가 라 전 회장 때문에 조직 전체가 패닉에 빠지는 선을 밑돌고 수습 가능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라 전 회장은 이미 책임을 지고 현직에서 물러났다는 점과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는 것과 징계 건은 전적으로 개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라 전 회장이 당분간 이사로서의 소명은 다하는 데 대한 공감대가 높아질 수 있어 향후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