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요일이다!" 기지개를 펴며 외쳐보지만 한 주 동안 마치 저금하듯이 쌓아왔던 피로에 하품만 절로 나온다. 산소 부족이라며 창문을 열어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초록의 숲이 아닌 회색의 빌딩 숲이며 입으로 들어오는 건 매캐한 공기.
그래도 주말에는 어디로 떠나볼까 고민하는 날인 금요일. 회색빛 공기가 아니라 푸른색 맑은 공기, 단풍으로 물든 붉은 산, 그런 산을 안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까지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준비물은 튼튼한 두 다리와 걷다가 목마르면 마실 물 한통, 그리고 멋진 경관을 담아둘 카메라, 카메라가 없으면 없는대로 떠날 수 있는 곳, 강원도 산소길로 짧은 걷기 여행을 떠나본다.
대한민국 팔도는 마치 모세혈관이 퍼지듯 많은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몇십년전만해도 검은색 아스팔트로 대한민국은 도로 만들기에 열을 올렸으나 이제는 흙길을 만드느라 아주 바쁘다.
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소길 |
남들이 그곳을 종점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곳이 시작점이다. 산소길도 마찬가지다. 북한강변 호수길을 시작점으로 할 것인지, 이렇게 밭 사이 길을 시작포인트로 잡을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바람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비닐을 벗겨낸 하우스에서는 배추와 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걷는 이들에게 강원도의 야채의 싱싱함을 자랑하는 것 마냥 이들은 초록을 뽐내고 있다.
산소길에서 만난 소 |
걷다보면 산소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지만 이렇게 가축들과도 눈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축사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소와도 잠시 눈을 맞춰본다. “안녕!”
푸른 북한강과도 함께하는 산소길 |
하우스 사이길, 밭 사이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북한강변까지 다다른다. 유유히 흐르는 강, 오른쪽으로는 나무와 풀들이 반긴다. 소와도 인사를 하고, 밭도랑에서는 강아지와 인사를, 그리고 여기에서는 나무와 인사를 한다. 유달리 키 큰 나무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다.
강원도는 산지가 전체 면적의 81%를 차지하는데 남한 전체로 따지면 64% 정도 된다. 강원도가 비율적으로도 산이 많고, 산림이 우거졌다는 얘기는 자연 산소발생량이 많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강원도의 산소발생량은 전국의 21% 정도 된다고 한다. 숲도 그렇지만 남한 전체 산소발생량의 5분의 1 이상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보드라운 흙길, 원시림 숲 |
흙길에서 시멘트 포장길, 다시 흙길 이렇게 길은 여러번 바뀐다. 이제는 원시림 그대로 살아있는 숲길을 걷는다. 계절이 아니라 이제는 겨울이 오는 것을 알리듯 길에는 낙엽이 쌓여서 운치를 더한다.
숲에서 발견한 글귀 |
보드라운 흙의 감촉을 느끼며,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곳곳에 작은 나무 안내판을 발견한다. 산소길이 몇 킬로가 남았을까 하는 게 아니라 걷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적은 표지판인 것이다.
혹시라도 그럴일 없겠지만, 만약 산소길을 걷다가 내가 왜 이 길을 걷나 싶은 사람에게, 걷다가 지친 사람에게 약간의 용기, 왜 걸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줄 글귀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가는 것도 산소길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길을 걷는 중간 중간에 만나는, 아주 가끔 만나는 표지판 |
나무가 있음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 "비켜가세요" |
산소길 중간 중간에서는 넘치는 센스를 발견한다. 이 길이 정말 사람이 걷는다는 길이라는 걸,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과 함께 걷는 길이지만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은 이런 작은 배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숲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애기똥풀, 두릅, 머루, 다래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고, 그들 나무 사이로 넝쿨이 이리저리 얽어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나무 보는 재미도 길을 걷는 흥겨움을 더한다.
키가 큰 사람이 행여 다칠세라 붙여 놓은 "머리조심" 쪽지 |
땅만 보며 걸을 사람을 위한 위험 안내 현수막 |
일반적으로 길을 가꾼다고 하면 보행자 편의를 위해서 큰 가지나, 나무들은 쳐내거나 어쩌면 뽑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천군은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사람들이 자연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배려를 해놨다. 그 배려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하나됨을 느끼고, 또한 따뜻한 마음까지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기에 약간은 위험한 곳도 있다. 왼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고, 펜스는 밧줄이 전부다. 때문에 걷기 여행자라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와 함께 걷는 다면 이렇게 위험한 구간에서는 손을 꼭 잡고 주의를 환기시키며 걸어야 할 것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과 낙엽으로 무르익어가는 산소길의 가을 |
폰툰다리로 진입할 무렵 |
어느덧 숲길도 끝나고 북한강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이제 이 산소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길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물 위의 다리, 폰툰다리 |
또한, 이 폰툰다리의 선도 예술이다. 강 기슭에서 10∼20m 떨어져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이 길은 정말 물 위의 S라인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폰툰다리에서 하이킹을 즐기기도 |
그리고 다리 위를 걷다가 만나는 자전거. 물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데,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도 짜릿할 것이다. 양 옆으로는 북한강을 끼고,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달리면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것도 같다.
폰툰다리 위에서 바라본 북한강의 모습 |
간동면 구만리 살랑골과 하남면 위라리 강변길을 연결한 북한강의 명품 산소길. 이 길을 걸으면서 받는 상큼함과 재미, 여운은 상당히 길다. 물위를 걷는 상큼함도 컸지만서도 자연에 대한 배려심까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길이다.
하이킹을 즐기려 산소길로 향하는 시민들 |
걷는 자의 편의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강 기슭에 두 사람이 어깨를 부비고 지나갈 수 있도록 자연훼손을 최소화 한 점에서 자연과 사람은 같이 걸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도 발견할 수 있다.
나무 한그루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에서 이 길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또한 길 익살과 재미까지 두루 갖춘 점은 걷는 이 길이 참 매력적이라는 느낌도 받게 한다.
비록 푸른 하늘은 달릴 순 없었지만, 푸른하늘을 머금은 물 위를 걸을 수 있어서 좋았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강원도의 빼어난 경치와 함께 했던 산소길.
책상 앞에서 산소가 부족하다고 하품만 하지 말고, 맑은 산소를 얻기 위해 떠나보는 건 어떨까?
-화천산소길 : 원시림의 숲속 산소길 1㎞, 물 위의 폰툰을 이용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수상폰툰길 1.5㎞, 물안개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수변산소길 2㎞, 나룻배체험길 0.3㎞ 등 총 4.8㎞
-화천군 관광정보 : http://tour.ihc.go.kr/
※ 여행 칼럼니스트 고연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