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구한말 정치인 이완용은 죽기 1년여 전 “세상에서 제일 처신하기 힘든 일이 세 가지 있다. 쇠약한 나라의 재상과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 그리고 빈궁한 가정의 주부가 그것”이라고 말해 망국의 주동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묘사한 바 있다.
이완용은 친미, 친러, 친일 등 여러 차례 색채를 바꿔가면서 정치를 했고 이념이나 신의보다는 결국 상황논리상 가장 적절한 방법론에 경도돼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실상 매국노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면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이나 빈궁한 가정의 주부처럼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 일을 역전, 이미 주저앉은 조직을 기사회생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항변을 저 말을 통해 한 셈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막중하고도 불가능하다시피 초인적인 임무수행을 요구하기에 (나라든 회사든 가정이든) 가장 중요한 곳간 열쇠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점에서 보면 흐르는 대로 산다는 대세론은 지탄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4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는 아주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대한통운 이원태 사장 참석 하에 대한통운 80주년 기념 간담회가 열린 것. 한 기업이 10여 성상을 넘기기 어려운 작금의 한국 재계 사정에서 80년을 이어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15년 (연)매출 5조원 달성이라는 웅대한 비전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적지 않은 듯 했다. “5년만에 2배?”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으로 투자로 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 사장의 답변이 크게 고무적이거나 구체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촘촘하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택배가 1억 상자를 돌파한 게 1993년부터 2007년이었는데, 1억에서 2억 상자로 가는 것은 3년여 만에(금년내 돌파 예상) 이룰 정도로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게 요체이고 앞으로 강한 인적 네트워크 등 여러 장점을 살리고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장 스스로가 다른 부분에서 말했듯, 물류 분야 전반은 진입이 굉장히 쉬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레드오션’이라는 것인데, 이 같은 과거의 성장 능력과 과거 기업 가치에 기대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지에 대해 불안감이 잔존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주가에 관심들이 많은데 이는 소위 내년 3월부터 풋백옵션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도달해야 하는) 주가가 ‘17만원+3년복리’ 조건인데 현주가는 이에 못 미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즉 풋백옵션 조건과의 갭을 메울 방안에 대한 문의) “미래가 굉장히 밝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주가를 결정하는 것이니, 투자자들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할 수 밖에는”이라는 모호한 청사진은 우려를 낳지 않을 수 없는 부분. 주식 유통량에 대한 고민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부연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다.
더욱이 국내 마켓셰어를 먼저 높이고(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에 “영역별로 집계를 하지, 전체 시장 점유율로 보지 않았다”면서 이를 전제로 보충답변을 한 점도 어색했다. 아울러 ‘80년 전통의 물류업계맏형으로서’라는 책임감을 요하는 전제를 놓고 쏟아진 질문들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인식 역시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것이었다.
3자 물류가 어려운 상황에 대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2자 물류와 자가 물류 관계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혹은 택배 분야의 제살 깎기 식 경쟁 해결책에 대한 문의에 대해 공정거래법이 있어 담합을 할 수는 없고, 다만, 바닥을 치고 올라오지 않겠느냐는 그저 업계 자정론에 입각한 답은 무책임한 맏형이라는 느낌마저 주었다.
결국 생각해 보면, 현재 대한통운이 그리는 꿈이란 결국 어느 순간 다시 회사가 혹은 그룹이 힘들어지는 시험에 다시 들면 금세 포기해 버릴 수 있는 어떤 구두선에 불과한 게 아닌지 우려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목표와 책임은 웅대한데, 그저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를 보면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미세한 차이를 더한 이원태 체제의 대한통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동아그룹 시절, 동아그룹이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자신들을 내다 팔 때 대한통운 직원들이 똘똘 뭉쳐 반대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의 결기는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