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천안방송을 둘러싼 태광그룹-홈쇼핑3사간 이면계약 의혹이 예상대로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의해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각본은 ‘6하 원칙’에 따라 세밀하면서도 꼼꼼하게 작성됐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A4용지 29장 분량의 천안방송 지분매각 기안서(내부문건)와 이면계약 당사자인 홈쇼핑 임원의 증언(녹취록)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태광그룹, 천안방송 이면계약 의혹’의 실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설마 했던 의혹은 사실이었다. 태광그룹의 천안방송 재인수는 미리 짜놓은 각본에 의한 편법 지분거래였다.
지금까지 제기된 천안방송 비리의혹은 크게 두 가지. △태광그룹과 홈쇼핑3사간 이면계약 의혹과 △천안방송에 대한 지분편취 의혹 등이다.
천안방송 이면계약 의혹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5년 11월. △LG홈쇼핑(현 GS홈쇼핑) △CJ홈쇼핑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녹성테크 등에 흩어져 있던 ‘천안방송’ 지분을 전주방송이 되사면서부터다.
<사진설명= A4용지 29장 분량의 천안방송 지분매각 기안서(내부문건)와 이면계약 당사자인 홈쇼핑 임원의 증언(녹취록)> |
그로부터 약 4년 뒤 방송법 규제가 완화됐다. 그러자 이호진 회장은 전주방송을 내세워 흩어져 있던 천안방송 지분을 되사기 시작했다. 당시 전주방송은 천안방송 지분을 4년 전 팔던 가격 그대로 주당 1만9675원에 도로 사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크게 두 가지. 주식 매매가와 주식을 산 주체다. 전주방송이 천안방송 지분을 되산 2005년은 케이블TV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불었었다. 2004~2005년 사이 인수합병 된 SO의 평균 가입자당 가치는 6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천안방송의 가치는 적어도 1710억원에 달한다. 지분파킹 의혹이 인 이유다.
이뿐만 아니다. 홈쇼핑 3사 등으로부터 주식을 되산 곳이 태광산업이 아닌 전주방송이라는 점도 의문이다. 전주방송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현준(16)군이 100%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곳이다. 천안방송을 둘러싼 지분편취 의혹도 여기서 비롯된다.
◆천안방송 내부 기안일지
이러한 각종의혹은 본지가 단독 입수한 태광그룹 내부문건을 통해 일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A4용지 6장 분량의 ‘3차 SO승인 관련 천안방송 지분매각(안)’이란 제목의 문건은 2001년 7월30일 ㈜한국케이블TV안양방송 J본부장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수한 내부문건에는 당시 천안방송이 처한 상황과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이 6하 원칙에 의거,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심지어 문건표지에는 “8/1 이호진 사장님까지 보고 결재”한 사항이라고 적혀있었다. ‘8/1’이란 2001년 8월1일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설명= ㈜한국케이블TV안양방송 J본부장이 작성한 ‘3차 SO승인 관련 천안방송 지분매각(안)’ 표지에는 '이호진 사장님까지 보고 결재'한 사항이라고 적혀있다.> |
두 번째 페이지에는 천안방송 ‘2. 현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돼 있었다. 문건에 담긴 내용은 △회사명: ㈜천안유선방송 △자본금: 49억3000만원 △액면가: 1만원 △TK(태광)취득금액: 98억1000만원 △주당가격: 1만9898원 등이다.
핵심의혹인 ‘3. 지분분산’ 방법은 세 번째 페이지에 소개됐다. 문건은 태광산업이 갖고 있던 천안방송 지분 100% 중 67%를 △LG홈쇼핑 △CJ홈쇼핑△우리홈쇼핑 △녹성테크 등에 분산토록 했다. 특히 문건은 각 회사명과 함께 그곳에 파킹해야할 천안방송 지분율과 주식수, 금액 등을 낱낱이 적어놓기도 했다.
네 번째 페이지에 소개된 ‘4. 분산방법’은 더욱 치밀했다. 문건은 각 회사 특성에 따라 계획적으로 지분을 분산하도록 주문했다.
문건에 따르면 LG홈쇼핑의 경우 △LG소유 타 SO주식 19억3995만5000원을 TK(태광 영문이니셜)에서 취득하고, TK 소유 천안유선주식 9만8600주를 LG에 양도토록 했다. CJ홈쇼핑도 이 같은 방법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타 SO지분과 천안유선주식을 맞교환했다.
반면 우리홈쇼핑과 녹성테크는 조금 더 복잡한 방법이 동원됐다. 태광산업과 맞교환 할 SO지분이 없었던 우리홈쇼핑의 경우는 △흥국생명에서 우리방송에 19억3995만5000원을 대출해 주면 우리방송이 TK 소유 천안유선주식 9만8600주를 사도록 강요했다.
녹성테크 또한 △안양방송에서 공사선급금 A/C으로 6억7898만4250원을 지불하면, 녹성은 이 돈으로 TK 소유 천안유선주식 3만4510주를 사는 조건이다.
특히 문건의 마지막 페이지 ‘5. 계약조건’을 살펴보면 태광산업과 홈쇼핑 3사간 이면계약 의혹은 더욱 커진다. 문건의 계약조건에 따르면 우리홈쇼핑과 녹성테크가 태광그룹 계열 고려상호신용금고로부터 대출한 비용과 이자는 전액 TK가 부담하도록 돼있다.
◆태광-홈쇼핑임원 전화녹취록
이러한 정황은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Y씨는 전 태광그룹 핵심계열사 대표며, M씨는 우리홈쇼핑 임원이다. 다음은 녹취록의 일부 내용.
<사진설명= 우리홈쇼핑 임원 M씨는 전 태광그룹 계열 대표 Y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천안방송 지분매입 자금이 태광으로부터 받은 돈이라고 진술했다> |
Y씨: 그러니까 그렇게 해주기로 약정을 한 겁니까?
M씨: 네, 네.
Y씨: 홈쇼핑채널 우월권을 천안이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홈쇼핑이랑 세 군데에서 단합해서 경영권을 인수할 수는 없었습니까?
M씨: 안됐었어요. 그게….
Y씨: 그게 왜 안 됩니까. 솔직히 원칙적으로 60% (지분)쥐면 되는 거 아닙니까?
M씨: 그게 안됐었어요. (홈쇼핑사들과 태광이) 약정을 한 게 있어가지고.
Y씨: 약정을 어떻게 했습니까?
M씨: (태광그룹)이 다시 (홈쇼핑사들로부터) 도로 사간다는 약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가지고 잠깐 (지분을) 파킹하기로 해서….
(중략)
M씨: 근데 (홈쇼핑 각 사가 천안방송 지분 사들일 때 준비해야 하는) 돈도 우리(각 홈쇼핑사들) 돈이 아니라 걔네들(태광그룹) 돈이었어요.
M씨: 실제 태광(그룹)에서 대출을 받아서
Y씨: 태광에서 대출을 받았습니까?
M씨: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에서 대출을 받아서 그걸로 (천안방송 지분을) 사고 이자도 걔네들이(태광) 다 물고 그랬어요.
Y씨: M님, (홈쇼핑사가 지분파킹해주는 대가로) 프리미엄이다 이런 거는 왜 안 받으셨습니까? (프리미엄 대가를) 챙기시죠.
M씨: 아 그 당시에 그걸 하면서 우리도 그랬고 (태광에서 나머지 관여했던 홈쇼핑사들의 치널) 송출료(비용)를 대폭 깎아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