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셋톱박스라는 게 있다. 주문형 비디오(VOD)나 네트워크 게임 등 차세대 쌍방향 멀티미디어 통신 서비스(이른바 대화형 텔레비전)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가정용 통신 단말기 기능을 갖춘 텔레비전 세트다. IP TV 등을 보시는 독자들은 티비 위에 얹힌 검은색 작은 상자를 떠올리시면 되겠다.
그 셋톱박스가 근래 여러 모로 주목받고 있다. 일단 스마트 TV가 도입되면서 앞으로 수요가 늘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몇몇 관련업체들의 운명이 헛갈리고 있는 데 대한 것이다.
우선 셋톱박스 수출 건으로 이름을 날리던 기륭전자(004790)가 연220억원 이익을 내던 회사로서 75억 적자를 내는 등 기복을 겪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5년간 노사갈등을 치르던 이 회사는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타결을 극적으로 이번에 이뤄냈다.
아울러 같은 셋톱박스 관련 업체인 홈캐스트(064240)가 소송과 경영권 분쟁에 흔들리던 이미지를 드디어 완전히 씻고 2분기 흑자전환에 이어 3분기에는 높은 영업익 증가폭을 시현해 관심을 모았다.
두 회사 모두 높은 기술력으로 관심을 모으면서 해외 시장 진출면에서 상당한 강점을 보여온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기륭전자에 대해서는 오늘날 부정적 이미지만 극대화되어 남은 듯 하다. 실제로 1일자 어느 유력지는 ‘기륭전자는…셋톱박스로 220억 이익내다 75억 적자’라고 제목을 달기도 했다. 그러면 이들의 차이는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 차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내외적 갈등에 대한 예방과 대책 태도 차이에 있다고 생각된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파견 근로자들은 2005년 7월 노조 결성을 이유로 해고당하자 복직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5년 넘도록 장기 농성을 벌여왔다. 그러나 노사관계는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고, 십수명의 조합원들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1900여일 가까운 노숙생활을 감수해 왔다. 기륭전자는 평행선을 달리기만 한 게 아니라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로 개척에도 나섰으니, 꼭 강성 노동운동 때문만에 회사가 기울었다고 평하기엔 어폐가 있는 듯 하다.
화합보다 갈등을 유지하는 길을 택한 것이 수익 급전 직하나 줄지은 경영진 교체 등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고 해석하면 지나친 것일까?
반면 홈캐스트를 보자. 이 회사라고 경영 사정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경영권 분쟁으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정관을 고칠 정도였고, 외감법 위반으로 고위간부들이 재판을 받는 등 고생이 극심했다.
결국 금년 들어서는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으니 인력을 100% 안고 가는 점이 기륭전자와 다르다고 단순히 대조하기에도 어려움 감이 있다.
하지만 기륭전자가 비정규직들의 몸부림과 많은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의 조언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평행대치를 택하는 드라이한 모습을 보였다면, 홈캐스트는 객관적 지표, 세칭 ‘스펙’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갈고 닦이지 않은 원석같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직원추천 입사제와 그 성과에 따른 특별상여금을 주는 등 가족같은 회사, 인재의 소중함을 아는 회사로 이미 일찍부터(2006년경부터) 자리매김해 온 바 있다. 이런 회사였기 때문에 읍참마속을 하였더라도 내부 갈등이 유사한 경우보다 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존재한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