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건설 인수가 이제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본가를 자처하는 현대그룹과 현대건설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사활을 건 진검승부의 마지막 컷인 승리의 미소 향배만 남았다.
본 입찰 마감 시한이 이달 12일로 다가온 가운데 그동안 현대건설을 두고 그룹 미래를 건 두 집안의 경쟁은 국내 M&A사상 최고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범현대家 상징인 현대건설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부심과 긍지와도 같은 무형의 의미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
현재까지 이번 M&A의 결과에 대해 두 그룹의 입장과 세간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현대차그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M&A 관건이 정통성이 아니라 ‘인수 능력’과 인수 후 ‘시너지’로 집중되면서 현대그룹 보다 경제적 논리로 세밀한 접근을 한 현대차그룹에 후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과거 대우건설 M&A 사례를 보듯로 인해 ‘승자의 저주’로 불리는 혹독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인수전을 ‘명분’이 아닌,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현대건설 前 임직원, 현대그룹 인수 반대 천명
지난 29일 저녁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여의도에서 500여명의 인원이 집회를 가져 관심을 모았다. 이날 집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대그룹 계열 현대증권 노조.
집회의 핵심은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반대라는 계열사의 공식적인 집단행동으로 민경윤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은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통해 부당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를 전면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이러한 배경에는 현대증권이 그룹 계열사 가운데 자금 사정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가 각각 8,012억원과 2,091억원의 적자를 낼 때, 현대증권은 1,788억원의 흑자를 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룹에서 무리한 인수 자금 확보를 위해 과도한 회사채 발행을 비롯한 계열사 자금 차출을 통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집단 행동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증권에 이어 현대건설 퇴직 임·직원들의 모임인 현대건우회 역시 2일 자 일간지 광고를 통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해 사실상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현대건우회는 “과열 인수전을 부추기는 감정적인 여론전 자제와 이미 작고하신 정주영 회장님을 홍보에 이용, 고인의 명예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삼가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혀 현대그룹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날 현대건우회의 공식 입장에 눈여겨 볼만한 점은 자금력에 대한 성격 규정이다.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과도한 차입금에 대한 부담과 합작 투자자에 대한 이권 보장 등으로 인수 기업이 재차 부실화 될 것을 우려해 인수 자금 조달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대그룹의 아킬레스건을 정면 공격했다.
또한 “인수자 선정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임직원의 피땀이 서린 잉여금과 이윤은 현대건설 미래를 위해 재투자 되어야지 해외 투기 자본에 의해 국외로 유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즉, 현대그룹의 전략적 투자자인 'M+W 그룹' 성격을 투기 자본으로 못박아 현대건설 퇴직 임직원들은 현정은 회장의 경영 혜안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따라서 건설 종가를 자부하며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일등공신' 주역들은 사실상 현대건설의 미래를 위해 현대차그룹을 선택한 것이다.
◆ 자금력·시너지 현대차 사실상 우위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사실상 ‘인수 낙점’분위기다. 일단 현대차는 현금성 자산을 4조5,000억원 가량 보유해 1조5,000억원 가량을 준비한 현대그룹에 크게 앞서고 있다. 특히 채권단이 인수자금의 외부 차입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 M+W그룹(전략적 투자자)과 손을 잡은 현대그룹은 ‘먹튀’ 우려까지 감내해야 한다.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점수가 높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생산설비와 판매거점을 이미 확보해 해외 건설 사업과 연계해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이 현대그룹에 비해 많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현대차는 세계 150여개국에 자동차를 공급하면서 8,000여곳의 글로벌 생산설비와 판매거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러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현대건설의 사업영역도 글로벌 성장기반을 한층 강화해 과거 중동 붐에 이은 제 2, 제 3의 건설 붐에 대한 기대가 나온다.
반면, 현대그룹은 물류와 수송 중심의 그룹 주력사업에 현대건설을 포함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최대 강점인 대북 SOC사업의 30년 독점권을 내세우고 있다.
향후 30년간 북한의 인프라 개발 비용이 50조원 안팎에 달한다는 것이 현대그룹의 계산이지만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를 감안한다면 미래 성장동력의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주장하는 현대건설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아울러 CEO의 경영능력에 대한 지적도 빼 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현대그룹이 2001년 자산총액 54조원, 재계 서열 2위 기업으로 시작해 그해 8월 현대건설 분리로 자산 감소가 이어지면서 올해 자산 총액 12조원, 서열 21위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의 성장가도를 달렸다. 2000년 자동차그룹으로 계열 분리 후 지난 10년간 3배 가까운 고도성장을 하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전세계인에 각인시키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현대차그룹은 2001년 자산총액 36조원 재계서열 5위에서 출발해 올해 자산 100조원, 재계 서열 2위로 기아차 인수와 한보철강의 정상화를 통해 자본 유출 방지와 대규모 고용창출을 이뤄내 사실상 ‘국민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결국, 시장에서는 대한민국 건설 상징인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 품으로 가는 밑 그림이 무리 없다는 등식이 오히려 당연한 평가라는 분위기다.
◆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 부담 미미”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인수 자금과 자동차 전문기업 정체성 문제는 인수전을 앞둔 파상적 공세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상대방을 끌어들이기 위한 문제 제기라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도요타의 글로벌 리콜 사태와 환율 하락세 지속이라는 상황에서 무리한 M&A가 아닌 현금 확보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증권가의 시각은 이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무려 9조8,000억원의 자산규모, 재계 서열 23위라는 공룡 덩치의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난관이 존재하지만 큰 흐름에서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 것이 문제라는 것.
한국투자증권 서성문 연구원은 "현대차는 지난 2005년 이후 해외 거점 공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일단락된 상황"이라며 "여러 상황을 감안해 소요되는 자금 규모는 1.2조원 수준이어서 2분기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순현금 5.4조원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 연구원은 "향후 100년은 전기차 시대를 감안한다면 선결요건인 충전설비 구축에 국내 최대 건설사인 현대건설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면서 "현대차의 브랜드 파워를 현대건설이 해외 수주 등에 활용해 신흥시장 진출에 활용할 수도 있어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밝혀 자동차 전문기업 육성이라는 정체성 문제 역시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난관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인 현대엠코 역시 건설이라는 동일 종목에 대한 시장 간섭 현상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 역시 향후 과제라는 것.
현대엠코는 계열사 공사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런나 대규모 그룹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국내 건설경기가 금융위기로 냉각되면서 현대엠코의 실적 역시 전체 건설 시장과 함께 동반 하락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대건설 인수가 현대엠코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효종 신영증권 연구원은 "엠코는 신성장동력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해외사업 대부분은 계열사 공사"라며 "초기 해외 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면 엠코와 시너지를 창출하고, 자동차, 제철로 구성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결국, 이번 현대건설 M&A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수 그 자체가 아니라, 인수 이후 얼마나 새로운 기업가치를 창출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 여부다.
과거에 대한 연고권이나 명분이 아니라 수 많은 직원들과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철저한 기여 논리에 따른 인수 능력, 인수 후 시너지 효과 등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