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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현대건설 인수할 돈 있다면…

[‘현대건설 인수전’ 막전해부④] “현대차 내실 다져야할 때”

박지영 기자 기자  2010.11.02 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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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대건설 인수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밑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명분’(현대그룹)과 ‘실탄’(현대차그룹) 싸움 양상을 보이는 이번 인수전에서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명분’을 다지고 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현대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해야 현대건설의 미래가 밝다”고 주장하는 현대차 논리에 맞서 현대차의 앞날을 걱정을 하는 이른바 ‘우회 공세’까지 펼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 막전해부④]에서는 현대그룹이 내세우는 명분의 핵심을 정리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M&A가 제기됐을 때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부인해 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현대차의 종전 입장은 ‘인수할 뜻 없다’로 간단하게 요약됐다.

△“현대건설을 인수할 여력이나 계획이 없으며 검토된 바 없다.”(2005년 윤주익 엠코 부회장) △“현대건설 인수는 메리트가 적고 대북사업에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2006년 보도자료) △“한마디로 현대건설을 인수할 의향이 전혀 없다.”(2008년 김창희 엠코 부회장)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는 사실무근이며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2010년 강호돈 현대차 부회장)

그랬던 현대차그룹이지만 이젠 입장을 바꿔 현대건설 인수전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차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음에도 일각으로부터 “사업 연관성이 부족하고 논리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현대건설 인수에 무관심했던 이유를 “현대엠코라는 건설 계열사를 이미 가지고 있었고, 자동차 전문기업으로서 현대건설을 인수할 필요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과거 모습을 내세우며 ‘입장을 돌변한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수전에 뛰어들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2000년 9월 현대그룹에서 공식적으로 계열 분리되던 첫날 “정몽구 회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세계 5위권에 드는 자동차 전문업체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한 대목을 강조하며 “자동차 전문기업으로서의 갈 길을 가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그룹 측은 “계열분리 10년 만에 국내 1위이자 세계 5위의 자동차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는 이제 업계 1위 도요타를 뛰어넘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재패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자동차 산업과 무관한 현대건설 인수전에 나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현대차그룹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차그룹의 네가지 산적 과제

   
▲현대가 적통을 상징하는 '현대' 머릿돌
현대그룹의 주장대로 현대차그룹의 앞길엔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일까. 현대그룹은 네 가지 정도의 과제를 이슈화 하고 있다. 

첫째, 미래형 자동차인 친환경자동차 개발 등 R&D(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현대그룹의 분석은 이렇다.

“2040년경이면 친환경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많아진다.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는 업체가 세계 자동차시장을 지배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친환경차 수준은 선진국 대비 76% 수준으로 이미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장악한 도요타와 전기차를 판매중인 닛산, 미쓰비시, GM에 비교해 한참 뒤처져 있다. 아직 전기차 양산도 시작하지 않은 현대차로서는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실제로 2008년 기준 현대차의 R&D 투자액은 12억1000만파운드로 도요타의 1/6 수준에 불과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준협 연구위원은 “현대차 R&D 집중도(매출액 대비 R&D 투자 규모)는 2.75%로 선발기업들은 물론 후발기업인 혼다(4.90%), 닛산(4.23%)보다 낮아 추격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그룹 측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가용현금은 8조원으로 추정되는데 해외 20여 곳의 현지공장 투자와 계열사인 현대제철 제2고로 추가 설치 등 막대한 설비투자를 고려할 때 이 가용현금은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만일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보유현금의 절반가량을 쓴다면 자동차 분야 경쟁력 강화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둘째, 해외 현지공장 정상화 문제다.   

연간 생산 30만대 생산능력의 자동차 조립공장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70% 이상 가동율이 유지돼야 하는데 현재 현대차 58.8%, 기아차 46.6%에 불과해 적자경영 상황이라는 게 현대그룹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서만 러시아 공장 준공(5000억원), 브라질 공장 착공(7100억원), 중국 제3공장(9400억원) 착공 등 지난 1997년 이후 해외공장설립에 약 8조원을 투자해왔다. 지난 8년간 매년 경상이익이 약 2조원라고 가정할 때, 벌어들인 돈의 절반가량을 해외공장 건설에 투자한 셈이다. 현대그룹은 이 점을 지적하며 “무모하게 추진되는 해외생산 확대전략이 현대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차는 현금이 필요하다”

셋째, 리콜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초 있었던 도요타 리콜 사태의 주원인은 무리한 글로벌 확장 정책으로 인한 품질 관리 소홀 때문이다. 생산공장을 전 세계로 확장하면서 현지 부품 협력업체들의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 20년간 도요타 모방전략을 채택해 해외확장 전략을 펼쳐온 현대차그룹으로서도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규모 리콜에 대한 대비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올해 도어 결함으로 K5 7000대, 배선용접 불량으로 쏘울?쏘렌토?모하비?K7 1만8000대(국내), 3만5000대(미국)를 리콜했다. 기아차의 전체 해외 리콜 규모는 8만~9만대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정성은 기아차 부회장이 경질됐지만 이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미국에서 소나타의 조향장치 결함이 발견돼 14만대가 또 리콜 당했다.

현대그룹은 “도요타의 글로벌 리콜사태 대응 비용은 3조~5조원으로 알려졌는데, 현대차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에 상응하는 현금을 보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넷째, 국내외 자동차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현대차의 올 상반기 내수 점유율은 45.23%로 지난해 동기의 50.5%에 비해 6개월 새 5%이상 곤두박질쳤다. 반면 수입차의 점유율은 사상 처음으로 올해 8%를 넘었고 한·EU FTA체결로 벤츠, BMW, 아우디의 수입량은 급증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도 심각하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중고차 교체 보상제도는 이미 폐지되었거나 폐지될 예정이다. 그동안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기업이었던 현대차의 세계시장 판매 감소는 불가피하다. 특히 현존하는 가장 까다로운 환경규제인 ‘유로5’에 부합하지 못하는 차는 내년부터 유럽 내 판매가 전면 금지되지만 현대차의 경유차종 중 이 규제를 완전 충족하는 모델은 투싼ix와 스포티지R 등 2종에 불과하다. 

환율도 하락세다.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현대차의 연매출이 1200억원 줄어들 정도로 환율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하지만 작년 평균 1277원의 환율이 올해 하반기에는 1070원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환율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네 종류의 ‘현대차 과제’ 이슈를 부각시키면서 현대차그룹이 자동차사업에 몰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상의 현대그룹의 논리는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는 발을 빼는 게 현대차그룹 앞길을 위하는 길’이라는 결론으로 요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