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비자금·로비의혹 유탄을 맞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천안방송 지분파킹’ 의혹의 최대피해자인 이중희(52) 전 아산케이블방송 대표가 돌아온 것이다. 지난 28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동 본지 사무실에서 태광을 만나 겪게 된 그의 한 맺힌 풀스토리를 2시간에 걸쳐 들었다.
1958년 충남 천안에서 3남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중희 전 아산방송 대표는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남부러울 것 없던 이 전 대표에게 첫 시련이 닥쳤다. 원하던 대학에 번번이 미끄러진 것. 막내를 바라보는 부모 마음도 속이 타들어가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에게 경북 상주지역서 작은 유선방송사업을 하는 매형이 손을 내밀었다. “함께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였다. 이때부터 이 전 대표와 유선방송사업과의 한 많은 인연이 시작됐다. 그의 나이 28세 때 일이다.
“이제 52세가 됐으니 그때부터 계산하면 20여년을 유선방송사업에 몸담았네요. 제 꿈과 인생을 다 바쳤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기술도 없었던 터라 고생도 참 많았죠. 어떻게든 돈을 벌어 효도하겠단 생각에 그만 두지도 못했어요. 묵묵히 일하며 조금씩 기술을 배워가기 시작했죠.”
◆젊음을 다 바친 유선방송사업
▲재벌기업 태광그룹과 10여년째 홀로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중희 전 아산케이블방송 대표. |
“인수자금은 농사일과 조경일을 하시던 부모님과 형님들께서 땅을 팔아 마련해 주셨어요. 그 때 돈으로 2000만원이란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죠. 부모님께선 대학등록금 대신이라며 너무 미안해하지마라 하셨지만 전 그러지 못했어요. 손끝에서 피가 나면 골무를 껴가며 피 땀 흘려 일하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어렵게 번 돈을 축내선 안 된다 다짐했죠.”
경북 상주에서 홀로 타향살이를 하며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을 때 그에게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유선방송수신관리법이 유선방송관리법으로 개정되던 1988년, 고향인근인 충남 아산군지역에서 중계유선방송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아산군지역 9개면에 60km 간격마다 설치해야할 유선방송전송선로였다. 또 이 전송선로를 만들기 위해선 50m마다 망 가설이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원자재 값만 5000만원 이상 요구되는 큰 공사였다. 이때 큰형이 구세주로 나타났다. 땅 4000평을 팔아 선뜻 사업자금 투자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먼저 망 가설 공사에 들어갔다. 여윳돈이 없었던 터라 직접 땅을 파 2인치 쇠파이프 세운 뒤 망 설치에 들어갔다. 지켜보다 못한 어머니와 형님, 처남까지 온가족이 이 일에 총 동원됐다.
“어느 날은 큰형님이 파이프 위에 올라가 일을 하시다 땅바닥으로 떨어져 크게 다친 적도 있었죠. 저 역시 전신주에 매달려 일하다 떨어져 죽을 뻔한 적이 한 두 번 아니었어요.”
고생 끝에 낙이 왔다. 1999년 온양시지역 중계유선방송사업체를 인수, 비로소 온양시와 아산군 전 지역을 사업구로 한 회사를 꾸리게 됐다.
◆태광 횡포… 결국 알거지
유선방송관리법이 방송법과 통합되면서 2000년 방송위원회가 출범했다. 방송위는 이듬해 2월 난립한 유선방송사를 정리하기 위해 30만 가구 기준, 전국 72개 지역으로 나눠 유선방송사업자(RO)에 대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전환승인 공고를 냈다.
SO전환승인에서 떨어진 유선방송사업자는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사업장 문을 닫아야만 했다. 10년을 끌어온 이 전 대표와 태광그룹 간 악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 전 대표의 경쟁상대가 바로 태광그룹 계열 천안케이블방송(현 티브로드중부방송)이었던 것이다.
“자금력이든 경쟁력이든 태광그룹과 맞붙어 이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늘의 도우심 때문인지 SO전환 승인심사 중 태광이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정한 법률에 어긋난다는 걸 알게 됐죠.”
당시 방송법에 따르면 대기업은 SO지분을 33% 이상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천안방송은 태광그룹 핵심계열사인 태광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였다. 당시 태광그룹 재계서열은 28위였다. (이는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는 ‘태광, 천안방송 지분파킹 의혹’ 배경이기도 하다.)
이 전 대표는 승리를 예감했다. 하지만 방송위는 엉뚱하게도 태광그룹 손을 들어줬다. 이 전 대표는 방송위의 이 같은 결정에 반발,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12월 법원은 방송위의 직권남용 행위를 인정, 이 전 대표 편에 섰다. 방송위 또한 항소를 포기, 곧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미운 털이 박힌 이 전 대표에 방송위가 순순히 SO승인을 내려줄 리 만무했다. 방송위는 자체감사를 실시, 해당직원 4명을 감봉처리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법원에서 승소하면 방송위가 저에게 SO승인을 내려줄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죠. 소송에 신경쓰느라 그 사이 태광그룹이 홈쇼핑3사에 지분파킹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겁니다. 2002년 7월 방송위는 또 천안방송에 SO승인을 내렸죠. 이에 전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 항고심에서 승소, 상고심에서 파기환송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우리가정은 만신창이가 됐죠.”
이 전 대표는 두 번의 재판에 무려 4년여 시간을 소비했다. 태광그룹 또한 무료시청료 공세 등으로 이 전 대표 가입자를 끌어가기 시작했다. 회사는 적자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는 40여명의 직원을 줄이지 않았다. 형과 형수, 누나에게 사정하는 등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자금을 빌려 사업장을 끝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로 돌아온 것은 수십억 원의 부채뿐이었다.
2005년 7월. 이 전 대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업장을 태광그룹에 10분의 1가격으로 헐값 매각했다. 반면 태광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사세확장을 시작해 현재 방송회사 15개를 거느린 종합유선방송회사로 성장했다. 바로 지금의 티브로드중부방송이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자포자기했던 이 전 대표. 하지만 그는 2년 뒤 태광그룹과 세 번째 법적 싸움을 시작했다. 2007년 천안방송 내부문건을 입수한 것. 태광그룹이 천안방송 위장 분산을 위해 담당간부들과 실천방안을 논의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현재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재수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이중희 전 아산케이블방송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사업 빚은 어떻게 갚았나.
▲태광그룹과의 오랜 법정다툼으로 눈물이 메말라버렸다던 이중희 전 대표. 그러나 자신 때문에 집과 땅, 건강까지 해친 큰형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큰 형님이 책임을 지고 모든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줬다. 집도 경매로 넘어갈 처지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난 개인 파산 신청을 했다.
-다시 소송을 준비할 계획인가.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다른 길을 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제 그 얘기는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있다.
-이번에 태광그룹 로비의혹이 발생됐는데 어떤가.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후련하다. 가족들이 많은 위안을 받고 있다.
-2001년 태광산업과 경합 당시 주변에서의 만류는 없었나.
▲지인들의 만류는 있었지만 가족들은 나를 믿고 모든 것을 위임했다. 큰 형님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항상 형님과 상의를 했다. 그 때는 충분히 허가를 받을 자격이 있기에 자신 있었다. 또 소송에서도 이겨 법원의 공정성을 믿었다. 설마 했는데 대법에서 그런 판결이 나올 줄 몰랐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2001년 SO승인된 업체는 대부분 방송위에 로비를 했다고 한다.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지역의 한 업체는 돈을 많이 썼는데도 탈락했다고 하소연했다. 이 사람은 그 때 H임원에게 5억원을 줬는데 탈락했다. 나중에 H에게 2억원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4군데 업체도 모두 똑같이 로비를 했다고 털어놨다. 공주, 보령 등 사업성이 별로 없는 지역의 업체들도 2억~3억원을 로비자금으로 썼단다. 사업성이 있는 대도시 지역은 좀 더 많은 5억원 이상을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했다.
-천안방송 내부문건 입수로 검찰에 재수사 요구를 했는데 현재 상황은.
▲서부지검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신문 보니 재수사를 결정했다고 하더라. 아직 결과는 알 수 없다. 2008년 고소했을 때 이것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사회구조가 억울한 사람 많이 만드는 것 같다. 정직한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변칙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것을 바로 잡아야 우리나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돈 많이 벌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