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태광그룹 비자금ㆍ로비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 칼날이 총수일가를 겨누고 있다. 검찰의 칼끝에 정·관계·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태광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또 어떻게 작용했지에 따라 이른바 ‘게이트’로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태광 비자금의혹 핵심인물로 이호진 회장의 팔순노모 이선애(82) 태광그룹 상무를 지목하고 있다. 본지 특별취재팀은 태광 비자금의혹의 성격을 정·관계를 향한 전방위 로비 사건, 즉 ‘태광게이트’로 규정하고 이를 추적한다. 우선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통하는 이선애 상무의 실체를 먼저 정리했다. <편집자>
올해로 여든을 넘긴 이선애 여사가 태광 비자금의혹 ‘핵심 키맨’으로 지목되면서 이 상무의 실제 영향력과 ‘활동 반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하고 있다. 그룹 내 공식직함은 태광산업 상무이사. 그러나 몇몇 가신들은 이 여사를 ‘왕상무’ 또는 ‘왕사모’라 부르며 ‘큰 회장’ 모시듯 했다고 한다.
실제 그의 위상은 ‘태광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동안 태광그룹 창업주는 고 이임용 회장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는 틀린 말이다. 땀 흘려 ‘밭(태광산업)’을 갈고 ‘씨(섬유사업)’를 뿌린 사람은 따로 있다. 이선애 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태광 비자금의혹 핵심키맨으로 떠오른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사진= 방송캡처> |
서둘러 귀국한 이 회장은 그해 부친의 권유로 이선애 여사를 만나 혼례를 치렀다. 그의 나이 스물두살 때 일이다. 신혼의 기쁨도 잠시, 이 회장은 못 다한 학업을 끝내기 위해 또 다시 일본행을 택했다. 그가 일본학교를 졸업한 건 1944년 즈음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곧바로 면사무소에 취직, 비로소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결국 부부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쥐꼬리만한 공무원 월급으로 타지생활을 이겨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여사가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훗날 이 직물공장은 태광그룹 모태인 태광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업 성장세는 눈부시게 빨랐다. 시장 한 구석 작고 허름한 직물공장은 8년여 만에 주식회사로 거듭났다. 이 여사는 부산 가야동에 새 공장을 짓고 이곳을 태광산업사로 명명했다. 이 회장이 공직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때 즈음이다.
◆무소불위 권력 ‘그룹실세’
1970년에서 80년대 세를 확장하면서 이 여사는 이른바 ‘뒷돈’을 챙기기 시작했다. 비자금은 당시 핵심계열사였던 대한화섬㈜와 동양합섬㈜를 이용, ‘무자료’ 계약을 통해 조성됐다. 물론 ‘검은 돈뭉치’는 모두 이 여사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창업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태광금고’였던 이 여사는 그룹 내 막강한 입김을 행사했다. 그 힘은 후계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이번 ‘태광사태’가 모자(母子)간 힘겨루기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재계 한 호사가는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이미 이쪽에선 오래전부터 이호진 회장과 왕(이선애)여사 간 불화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유교적 가풍이 강한 왕여사가 결국 회사 경영권을 장손자(이원준)에게 넘길 텐데 이 회장이 이를 두 손 놓고 지켜만 보겠느냐. 이번 사태만 보더라도 이 회장이 어린 자기자식한테 무리수를 둬가며 지분을 넘겨주려다 이지경이 된 것 아니냐”고 귀띔했다.
실제 이번사태의 발단은 이 회장이 왕여사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부친 이임용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신과 자녀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계열사를 꾸준히 늘려왔다. △티알엠(옛 태광리얼코) △티시스(태광시스템즈) △한국도서보급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 회장은 여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그룹 핵심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데 사용했다. 1997년 이 회장이 갖고 있던 태광산업 지분은 고작 15.14%. 그러나 현재는 25%대로 끌어올린 상태다.
반면 이 여사를 비롯한 친인척 특수관계자 지분은 같은 기간 25%에서 18%로 뚝 떨어졌다. 재계를 중심으로 “왕여사가 ‘아들의 난’을 막기 위해 검찰 쪽에 일부러 이 회장 비자금을 흘린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태광 “일종의 성장통일뿐”
▲태광그룹 핵심계열회사인 흥국생명빌딩 |
그룹 관계자는 “비자금의혹 제보자인 박윤배 대표가 회사에서 퇴직 처리되자 억하심정으로 되는 데로 찔러보는 것”이라며 “천안방송이나 쌍용화재 등 이미 2003년 대부분 무혐의 처분 받은 사안들”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총수일가 간 불화설에 대해서는 “(이호진 회장을)효자라고 하시는데 무슨 소리냐”며 “추측성 악성루머를 퍼뜨린 언론들에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 ‘태광게이트’ 추적 시리즈는 박지영·이철현·김소연 기자로 구성된 본지 특별취재팀이 ①이선애 태광 상무의 실체 ②이중희 전 아산방송 대표 단독인터뷰 ③태광 정관계 로비 리스트 일부 확인 ④천안방송 지분파킹의 진실 ⑤태광 또 다른 비자금 창구 포착 등 5개 주제를 심층취재해 차례로 보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