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늘 전진(前進)을 강조하는 세상에 살면서 후퇴(後退)라는 말은 그것이 무엇이든 마땅치 않다.
몇 년 전인가 빨간 코트를 입은 배우 김정은이 “여러분~부자되세요” 하면서 애교를 날리던 광고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 광고는 서로 주고받는 인사멘트의 혁명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안녕하세요?” 라고 주고받던 일반적인 인사에서 “부자되세요”로 바뀐 인사는 왠지 모를 역동성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고 때마침 세상은 경제적으로 자산버블이 태동하던 시기였던 탓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후에 부자아빠 시리즈가 책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나중엔 부자아빠 펀드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부자(富者)는 우리 곁으로 꽤 가까이 또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마치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듯 사회 곳곳에서 부자 되기 운동이 펼쳐지고 펀드판매가 홈쇼핑에 등장하는 웃지 못 할 광경까지 나타났으며 인사이트 펀드가 판매될 당시에는 번호표를 받아야 가입이 가능할 정도의 과열을 보였다고 하니 적어도 부자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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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marketoracle |
그러나 그러한 과열이 막상 부자 수(數)를 늘리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고 보여 진다. 부자는 커녕 빚만 잔뜩 늘려놨으니 말이다.
버냉키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하는 이유는 후퇴를 모르는 지도자의 고집이 1차 금융참사라는 경고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에 여지를 보이지 않고 빚을 늘리기 때문이다. 위기 태동의 시작에 그린스펀이 있었다면 버냉키는 행동대장의 역할을 자임했다.
그들은 월가에서 벌어진 머니게임에 희생된 바다건너 사람들에 대한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으며 특히 버냉키의 광적인 양적완화 정책은 더 이상 그가 제시하는 해법(解法)에 신뢰를 보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다시금 2차부양책이 임박하고 있다.
시장에서 거래를 업(業)으로 삼고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느낀 점은 딱 하나다.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생각대로 T”를 외치는 광고를 보거나 시크릿(secret)같은 긍정적 자기 암시를 주장하는 책을 볼 때마다 “정말 생각대로 다 되던가”라고 묻고 싶은 충동이 가끔씩 일 때가 있다. 긍정적이고 밝은 마인드가 지나쳐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화가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비관론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뭐든 하면 된다는 논리로 개별적인 상황과 각각의 개성을 무시한 사회의 요구는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자발적 후퇴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세상의 시류(時流)에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이 가지는 고유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투자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불필요한 매매를 유발시키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선조들은 재물을 물(水)에 비유했다. 물이란 골을 만나면 거기로 흘러들게 된다. 뾰족한 바위를 넘어 골로 흘러드는 물은 세상에서 요란만 떠는 패자(敗者)들이 놓친 열매들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열매들을 취하기 위한 전략적인 후퇴는 최고의 지략(智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 한반도에 몰아닥친 태풍 곤파스는 그저 남의 일처럼만 느껴왔던 그런 재해(災害)와 다르게 수도권을 직접 강타하면서 자연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불과 만 하루도 머물지 못한 채 곤파스는 위세을 다하고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길바닥에 널브러진 나뭇가지와 깨진 간판들을 뒤로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드러난 새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은 태풍이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아닌 자연의 순리가 주는 엄숙한 메시지였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흩어버린 나무 잔해가 어지럽게 펼쳐진 공원을 걸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비를 맞고 햇살에 새파랗게 반짝거리는 나뭇잎들이었다. 덩치 큰 나무마저 뿌리 채 뽑아버린 태풍이 한낱 가녀린 나뭇잎에겐 축복이었던 셈이다. 후퇴(後退)의 이유를 찾으셨길 바라는 마음이다.
※ 켐피스(kempis)는 켐피스의 경제이야기(http://blog.daum.net/kempis70) 운영자이다. 파생상품운용 딜러로 11년간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yahoo 금융 재테크, daum금융 재테크, 아이엠리치(http://www.imrich.co.kr) 등에 기고문과 전문가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