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08년 초여름 월스트리트저널은 칼럼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칭기즈 푸틴’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칼럼을 통해 “푸틴이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몽골 등 동북아지역 국가에 생사 여탈권까지 요구하고 있다. 몽골제국의 정복 영웅 칭기즈칸 흉내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막은 이렇다. 당시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는 몽골 수출 원유가격을 40%나 급격히 올렸다. 대(對)러시아 석유 의존도가 무려 90%를 넘는 몽골은 단번에 인플레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나온 로스네프트의 몽골 정부 압박 카드가 재미있다. 이 회사는 “우리에게 몽골 유전개발권을 전부 넘겨준다면 원유가격을 다시 내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로스네프트가 푸틴이 설립한 공기업이었으니 국제 상도의도 체면도 내던진 그 강하고 잔인한 공격에 푸틴을 비판한 것은 일응 정당해 보인다.
최근 STX그룹 강덕수 회장이 야심차게 세계 각지에 진출하고 있다. 그런데 극심한 논란에 휩쓸려 그의 세계 경영에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STX그룹이 추진해온 100억달러 규모의 아프리카 가나 20만호 주택 건설 사업에 대한 본 계약이 체결 직전 갑자기 연기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가 자원 수탈 논란에 따른 해당국가 의회와 여론의 반발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하우징 계약이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오리무중에 빠진 것은 최종 회의에서 곧 바로 해결될 수 없는 몇 가지 법률적 문제들이 튀어 나왔다는 게 해당국가 고위급 인사들의 설명이다. “법무장관에게 법적인 문제에 대한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데, 법적 문제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뉴스, 데일리가이드 등 해당국가 언론들은 “한국이 가나의 석유를 공사대금 담보물로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국회가 승인한 범위 밖의 일”이라는 게 이들의 비판적 보도의 기둥 줄거리다. 야당인 신애국당(NPP)과 사미아 응크루마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도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 현 정부와 STX의 거래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 여론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국제법상 ‘현물 대납’을 기조로 하는 계약이나, 경우에 따라 ‘보증물’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계약을 받아들이는 쪽이 자원 수탈로 시달려온 아프리카, 그리고 그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한 가나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에 맞서 독립 투쟁까지 벌인 가나 사람들이다. 자원빈국인 것이 우리 형편이긴 하나 그런 이들의 자존심을 긁고 국격을 깎일 위기를 무시할 만큼 석유가 절실한 것은 아니다.
본 기자는 STX그룹이 자원수탈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 경제인들처럼 굴진 않았으리라 물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사업은 이미지가 생명이다. 이미 STX그룹은 가나 사람들 다수의 눈에 식민주의 악마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점이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