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여름 태풍 ‘곤파스’ 이후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던 농산물의 가격이 이제는 차츰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다.
한포기에 최고 1만3000원까지 치솟았던 배추가격도 모 유통업체에서 현재 2000원 안팎의 가격에 예약을 받고 있으며, 4000원 가까이 치솟던 애호박이나 상추 한 봉지의 가격도 1000원 대까지 주저앉았다. 한 달 사이에 호박이나 상추가 대풍(大豊)이 든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가격에는 생산비, 생산자이윤, 수송비, 도소매업자 이윤 등이 포함되어 시장가격이 되는데, 완전경쟁의 시장에서는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가격을 매개로 경쟁적 수급활동을 하는 중에 균형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거대기업 1개사 또는 몇 개 사가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가격을 결정해서 이윤을 확보하려 하는가 하면, 소수의 대기업들이 시장을 과점적(寡占的)으로 지배해서 가격을 관리하고 생산성 향상으로 생산비가 하락해도 가격을 내리지 않고 이윤을 부당하게 확보하려고 한다.
물론 이상기후로 인해 평년에 비해 작황상태가 좋지 못한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동이나 다를 바 없이 5~6배의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던 배추 값이 중국산 배추의 수입 소식과 함께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면 이를 두고 단순히 기후 탓만 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유통구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대책 없이 풀린 돈으로 물가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민생문제와 직결되는 농산물 값의 급등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러한 가격 급등락은 비단 농산물 값뿐만 아니라 거래가 가능한 모든 재화에 있어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상이다.
주식, 부동산, 통화(currency),그 외에도 원자재 심지어는 직업이나 각종 정책들에도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벌어지는 요지경은 자주 나타난다. 유동성과 버블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의 차이일 뿐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버블을 만들어 낸다.
특히,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를 보이는 분야가 있다면 더욱 치명적이다. 투기꾼은 바로 그런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돈이 몰리면 사람들의 시선도 따라 몰리고 이른바 호객꾼들이 시장에 등장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대중을 자극하고 시세를 끌어올린다.
그러다보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과정은 더 이상 살 사람이 없을 때까지 계속된다. 물론 뒤이어 폭락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가격 상승의 관성에 취한 우매한 대중은 그런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새천년 IT버블이 한참이던 시절 기업들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엄청난 양의 주식을 시장에 공급했다.
마침 시장이 활기를 띠는 바람에 대부분의 유상증자는 무리 없이 시장에서 소화되었고 투자자들은 의심 없이 청약대열에 동참해 자신들의 계좌에 꽤 많은 양의 주식을 채워 넣었다. 그 당시 공모주나 유상증자에서 주식을 배정받는 것은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뒤에 벌어진 엄청난 주가폭락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러한 불행은 수요와 공급이 정확히 일치한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지만 그런 일이야 말로 정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야말로 투자자 자신이 하기에 따라서 자본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하다.
이는 사이클이 길어서 일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예측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빈번하게 그리고 시세에 흥분만 하지 않는다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기회이다.
배추 값이 제자리를 찾아오자 이제는 전세 값이 흥분을 하고 있다. 일주일 사이 수천만원씩 뛰는 전세 값에 잠을 못 이루는 서민들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이참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 위기 이후에 진행되는 갖가지 버블은 그 사이클이 아주 짧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경제 회생의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장난이나 다를 바 없는 미니버블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꺼지길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잠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거나 흥분으로 시장에 뛰어들면 상투를 잡을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부동산만큼은 다르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호객꾼들은 분명히 금융위기 이후 분양물량이 축소돼서 아파트 품귀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택보급율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그것이 실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을 긴장시키며 자극한다. 실제 이번 배추파동당시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아예 김치를 팔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김치공장이 아예 만들기를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이러다 김치를 아예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김치업체들은 20~30% 가량 인상된 김치가격으로 새 김치를 출시했고 배추 값은 이제 다시 원상 복귀됐다. 경제가 활력을 띄고 서서히 구매력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자연스럽게 오르는 현상마저 기(奇)현상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의 배추파동처럼 말도 안 되는 가격변동을 앞으로 얼마나 더 겪어야 미친 유동성이 수그러들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면 암울하기만 하다.
따라서 호객꾼에 휩쓸리지 않는 두꺼운 귀와 다수가 흥분할 때 차분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 있는 냉정함은 마치 쇼(Show)나 다름없는 유동성의 광기(狂氣)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과도한 유동성이 가져다준 폐해를 지켜본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두려움을 넘어 짜증스러울 정도로 여기저기서 버블을 제조하고 있는 금융 시장이 이제 그 폭탄을 터뜨릴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 켐피스(kempis)는 켐피스의 경제이야기(http://blog.daum.net/kempis70) 운영자이다. 파생상품운용 딜러로 11년간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yahoo 금융 재테크, daum금융 재테크, 아이엠리치(http://www.imrich.co.kr) 등에 기고문과 전문가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