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약 석달간 일명 ‘제2계룡대 비리 의혹’으로 불린 사건에 대해 취재했
대기업집단인 LG그룹과 특정 가구업체 사이의 커넥션을 추적하는 동안 별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중 특히 기자의 흥미를 끈 것은 LG그룹 측의 대응방식이었다.
100억원대 가구 구매를 둘러싼 비리의혹에 대한 LG 반응은 한마디로 ‘대단치 않은 일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는 식이었다.
2009년 11월 특정 가구업체에 특혜를 주고 납품가를 과다 계상해 9억여원 손실을 냈던 ‘계룡대 근무지원단 납품 비리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당시 돈 세탁의 핵심역할을 맡았던 해군 법무장교 2명이 적발돼 옷을 벗고 7명이 구속되는 등 총 31명이 사법처리 되는 것으로 일단락 됐고 국방부는 이 사건으로 체면을 구겼다.
이로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지난 6월, ‘제2의 계룡대 사건’이 등장했다. 공군과 사무용가구업체 K사가 뒤얽힌 사건이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인 잘 잘못의 윤곽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앞선 계룡대 근무지원단 사건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군 수사관의 관측이다.
K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LG도 수상스럽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K사는 LG그룹의 사옥 리모델링 사업에도 깊숙이 참여했는데, K사에 LG그룹 임직원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되면서 의혹은 짙어갔다.
LG그룹은 사옥 리모델링을 준비하면서 지난 9월부터 대대적인 이사를 시작했다. 이사 계획엔 무려 100억원대에 달하는 사무용가구 전면교체도 포함돼 있다. 비수기를 보내던 가구업계는 한껏 들떴다. 유가증권시장에선 지목된 가구업체 주가가 상승세와 급등행진을 보이기도 했다.
LG그룹은 업체 선정방식으로 비공개 품평회를 선택, 그중 전체에 80%이상을 차지하는 사무용가구(O.A)부문을 K업체와 수주 계약했다. 하지만 K업체는 이내 군 비리에 연루됐고 이때부터 LG그룹은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개 대형 기업일수록 자신의 비리의혹이 붉어진 상황에 직면하면 뚜렷한 조치를 취하고 입장을 밝히게 마련이지만 LG그룹은 “우리는 아는 바 없다”고 딱 잡아뗐다. 석달 동안 문의하는 기자에게 “가구 담당을 찾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예 “담당계열조차 모르겠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시 언론에선 ‘LG그룹이 100% 출자한 서비스전문기업인 서브원이 100억원대 가구 담당을 맡게 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물론 LG그룹이 인정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LG그룹은 돌연 태도를 바꿔서 ‘내부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정은 서브원 측도 마찬가지. “담당자는 해외출장 중”, “지금은 부재중”, “그 내용은 윗선만 알고 있다” 등의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서브원 측 한 관계자는 “가구가 이슈가 될 만한 일이냐”며 “고작 가구 때문에 이러느냐. 규모가 얼마나 되느냐”고 오히려 되묻기까지 했다. 100억원+a 규모나 되는 거래에 구린내가 나고 있는데, LG그룹의 대처 모습은 “이슈가 될 만한 일이냐”였다. 이들의 반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담당자조차 파악 못하는 (혹은 모른 채하는) LG그룹 윗선과 장기간 해외출장 출장 중인 서브원 담당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재상태인 가운데 K업체의 군 수사 이미 검찰로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LG그룹의 O.A부문 납품계약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였다.
LG그룹과의 접촉을 시도한지 꼭 두 달째로 접어들었을 즈음 LG그룹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삼성이 아니다. LG는 바뀌지 않는다. 만일 삼성이 이런 경우에 직면했다면 1등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사건에 연루된 K사와 계약 취소에 나섰겠지만 LG그룹은 아니다.” 자신들이 연루된 의혹 사건에 대처하는 LG의 자세를 보면서 ‘이들은 스스로 1등을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