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기업 해부] 이번 회에는 한국야쿠르트를 조명한다. 한국야쿠르트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한국야쿠르트는 창업 초기부터 건강식품을 위주로 한 종합식품회사로서의 꿈을 사업목적에 담고 있었다. 한국야쿠르트는 이 사업 목적을 바탕으로 ‘건강사회건설’이라는 창업정신을 태동시켰다. 이것은 또한 한국야쿠르트의 경영원칙이자 기업의 철학이기도 했다. 창업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야쿠르트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원칙에서 흐트러짐 없이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다.
1969년 5월 청계천 7가에 ‘삼호유업(三昊乳業)’ 현판이 걸렸다. 이어 6개월 후인 11월26일 서울 중구 무교동 11번지의 작은 사무실에서 ‘한국야쿠르트유업주식회사’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총 주식수 3만주에 8명의 주주가 참석하며 대한민국을 건강사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의 막이 오른 것이다. 다음 날인 11월27일, 한국야쿠르트유업주식회사는 수권자본금 5000만원, 납입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 등기를 했다. 발효유 전문업체가 이 땅에 첫 선을 보인 날이다.
초기 한국야쿠르트는 창업주 윤덕병(83) 회장과 한국야쿠르트의 초대 전문경영인 윤쾌병(작고) 사장이 아이디어로 유산균을 사업영역으로 선택하며 태동했다.
◆발효유 인식 부족했던 70년대초
윤 회장과 친척 관계인 윤 사장은 일본에서 농수의학을 전공한 후 서울대를 거쳐 건국대 축산연구소장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일본의 유가공 업체를 돌아볼 기회가 많았던 윤 사장은 일본에서 각광받던 유산균 발효유에 주목하며 인연을 맺게 된다.
특수유산균을 이용해 만든 야쿠르트 음료는
[사진=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
시로다미노루 박사와 친분 관계가 있던 윤쾌병 사장은 유산균 발효유 사업이 유망할 것으로 판단하고 윤덕병 회장과 함께 사업 준비에 착수 1970년 9월 한국야쿠르트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969년 무교동 사무실에서 총 8명으로 시작할 당시 수권자본금 5000만원, 납입자본금 3000만원, 1주당 주가 1000원, 총주식수 3만주였던 한국야쿠르트는 일본야쿠르트사와의 합작을 통해 1971년 4월28일, 1억331만6000원을 유상증자(일본야쿠르트측 9702만원 납부)해 총 납입자본금 2억5331만6000원, 수권 자본이 3억원으로 늘어난다.
이후 1971년 6월30일, 하루 30만병 생산이 가능한 안양공장이 준공됐다. 그해 8월10일부터는 국내 최초의 유산균 발효유인 야쿠르트가 시중에 판매됐다 .
그러나 한국야쿠르트가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창립 초기였던 70년대 초, 일반 국민들의 발효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균을 어떻게 돈을 주고 사 먹는냐’, ‘병균을 팔아 먹는다’는 등 유산균에 대한 편견이 팽배한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했던 것.
하지만 생활에 다소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먹는 제품이었던 야쿠르트는 건강음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특이한 맛, 저렴한 가격을 기반으로 하자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아울러 판매점들이 가정이나 사무실까지 직접 전달해 주는 판매방식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어 야쿠르트 판매는 경이로운 신장에 이룬다.
야쿠르트 판매 첫해 2만579병에 불과했던 첫해 하루 판매량은 개시 2년 후인 1973년 6월에는 하루 판매량이 10만병을 넘어섰고 매년 50~100% 이상의 성장을 계속했다.
이후 수요가 늘어 하루 평균 판매량은 1977년 8월에 100만병, 1983년 6월에 300만병, 1989년 5월에 500만병, 1994년 4월에는 800만병을 돌파했고, 현재는 일평균 250만병(연매출 1200억원)이 팔리고 있다. 300억병은 출시 후 지금까지 시간으로 환산할 때 1초당 34병씩 판매된 것이며, 전 국민이 1인당 820병씩을 먹은 셈이다.
초기 조그만 야쿠르트로 출발해 메치니코프, 윌, 쿠퍼스 등 발효유 시장의 기능성 재품 시대를 열기도 했던 한국야쿠르트는 1983년 라면사업과 1995년 음료시장에 진출하는 등 1980년대부터 유산균 발효유 외에 라면, 우유, 음료, 먹는 샘물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2세 경영 초읽기?
한국야쿠르트의 ‘선장’은 윤덕병 회장이지만, 현재의 실질적인 ‘항해사’는 양기락 사장이다.
창업주인 윤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들이 회사를 이끌어 나가도록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장을 거친 사람이 단 4명일 정도로 한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이 일하는 회사로 키우고 있다.
초대 사장이었던 고 윤쾌병씨는 1969년 5월부터 1989년 3월까지 무려 20여년간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2대 사장이었던 이은선씨는 1989년부터 11년 동안 대표이사를 맡았고 서울대 농대 졸업 후 공채 1기로 입사해 3대 사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던 김순무 사장은 2000년 3월 선임된 뒤 2007년까지 한국야쿠르트를 이끌었다.
현재는 양기락 사장(62)이 1975년 8월 야쿠르트에 입사한 뒤 1991년 이사로 선임됐다. 상무, 전무를 거쳐 2005년부터 총괄부사장으로 근무하며 입사 32년 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최근 윤 회장의 외아들인 윤호중 전무(39)가 윤 회장 및 양 대표와 함께 조화를 이룬 경영체제의 모습을 보이면서 2세 경영 작업이 초읽기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려대와 일본 게이요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한 윤 전무는 해외사업을 비롯한 신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플라스틱 용기 제조와 운송업을 영위하는 삼영시스템 (100%)과 플러스자산운용 (25%), 능률교육 등 한국야쿠르트의 계열사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지난 6일 ‘재벌닷컴’이 집계한 올해 한국 400대 부자 명단에 따르면 윤호중 전무는 개인재산이 2222억원으로 평가되면서 부자순위 104위에 오르는 재산가로 부상하기도 했다.
한편, 1997년 식혜, 건강식품 등을 생산하는 비락을, 2004년 최근 롯데삼강에 매각한 파스퇴르유업을, 2006년엔 플러스자산운용 등을 인수했다. 2008년에는 건강검진 및 건강보조식품 등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한데 이어 지난해 7월 인수한 능률교육을 통해 방문판매형 교육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또한 경기 동두천 티클라우드(구 다이너스티)CC를 인수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음에는 한국야쿠르트 계열사 및 지분구조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