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모처럼 일찍 일어나서 가방을 챙기고, 간식거리, 없는 솜씨지만서도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본다. 부산하게 움직이다보니 문득 초등학교 때 소풍간답시고 가방 가득 간식거리 챙겼던 일이 떠오른다.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선 적은 없던 것 같다.
좀 더 특별한 기분으로 새롭게 나서는 길, 이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오늘 내가 갈 곳은 신라의 도시, 경주다. 상쾌한 공기, 살랑이는 바람까지 더할나위없이 소풍가기에는 적합한 날이라고 하늘은 말해주고 있었다.
경주는 한번쯤 다들 다녀갔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여행 이후로 마음 먹고 방문하기에는 교통이 좀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새마을호를 타고 오면 4시간 44분만에 도착하는 곳이 경주지만, 나름 시간을 절약한다고 머리를 쓴 게 서울에서 동대구까지 ktx를 타고, 다시 동대구에서 경주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이렇게 경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런 고생도 이제는 끝, 11월 1일부터는 ktx가 개통되기에 2시간 5분이면 신라의 도시 경주에 도착할 수 있다.
수학여행 코스 1번지, 가을소풍 1번지 경주. 아니나다를까,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먼저 반기는 것은 대형전세버스들의 행진이었다. 클랙션을 빵빵 울리면서 도로를 씽씽 달려가는 버스들.
그리고 유치원부터 초등학생,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학생들로 경주는 야단법썩, 천년 도시의 고즈넉함은 이미 온데간데 없다.
불국사 |
가을은 이 불국사에도 다가왔는지 단풍잎도 이제는 빨간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세월의 흐름, 계절의 바뀜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안양문에 올라서 불국사의 전경을 바라보고자 하는 관광객들 몇 명이 이곳은 변함없이 인기가 많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보탑과 석가탑 |
사람들은 석가탑보다도 다보탑에 많이 몰린다. 왜일까? 소박한 미를 자랑하는 석가탑보다도 화려한 다보탑을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것만 같다. 같이 세워 놓고 비교당하는 탑의 입장이란... 사람도 똑같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절로. 석가탑과 다보탑은 천년의 세월을 안고 그 자리에서 신라의 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 대웅전 |
불국사 방문을 환영한 것만 같은 느낌의 활짝 열린 문 |
정말 소풍을 나온 것 마냥, 나도 수첩과 볼펜을 들고 메모를 하며 불국사를 둘러 봤다.
불국사를 휘이 돌아 내려오자 왁자지껄 떠들면서 옥로수를 마시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목마른 이에게는 어떠한 음료수보다도 달콤함을 선사해 줄 물.
물 맛을 제대로 보고가는 아이들 |
“물 마시고 가자! 여기 물맛도 봐야지!”
어린이들이 “물 맛”이라는 표현을 쓰자, 웃음이 피식 났다. 어깨에 맨 가방에는 분명 도시락과 간식이 들었을테고, 이제 곧 즐거운 점심시간이니 이녀석들은 더욱 더 신이 날테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어린이들은 쪼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석굴암 산책로에서 만난 다람쥐 |
바로 다람쥐. 누가 뺏어먹을까봐 손으로 꼭 잡고 볼이 미어터져라 급하게 식사를 하고 있던 다람쥐. 사진을 찍어도 도망가지 않더니, 좀더 가까이 찍기 위해 살금 발을 떼자 먹던 밤도 팽개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에는 개도 안 건드는데, 나는 다람쥐를 건들고야 말았다. 다람쥐에게 이렇게 미안할 줄이야…
안압지 |
안압지의 가을 |
더불어 못 이름은 원래 월지였는데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이곳. 평일 오후를 이 임해전지에서 보내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옛날에는 향락, 풍류를 즐겼던 곳이지만 이제는 군신들의 연회, 귀빈 접대 장소가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기에 하늘에서 이곳을 보는 신라의 왕들도 느낌이 참 새롭지 않을까?
첨성대 |
첨성대를 방문한 많은 학생들 |
벽돌 하나하나 세어보는 어린이들을 비롯해서 첨성대를 빙 둘러보는 어린이, 사진 찍는 어린이, 더불어 첨성대 주위를 누가 빨리 뛰나 내기까지 하는 아이들까지 활발하고 다양한 어린이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신라인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곳, 포석정 |
혼자 온 나를 반겨준 것일까? 개미 하나 보이지 않는 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갈정도로. 또한 수학여행, 소풍 코스로 이곳은 제외된 것일까란 의문이 들 정도로 포석정은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한적한 포석정, 이곳에도 가을이 오고 있다 |
포석정을 찾은 학생들 |
그렇게 요란하게 포석정을 방문한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적으면서 경주를, 아니 신라의 역사를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었다. 이네들이 듣는 해설사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자니 소풍 기분은 절로 났다.
경주의 황금들녘 |
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자연을 관찰하거나, 유적지를 견학하는 현장학습 겸 떠났던 소풍. 하지만 교복을 벗어버린 후로, 성인이 되어버린 이후로는 소풍이란 단어는 어릴 적 추억으로만, 그저 사진 속에서 앨범 속 한 장면 속에서나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화창한 가을날, 이렇게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야외로 나들이를 떠나본다.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소풍을.
어렸을 적 밤잠 못 이루며 설렘을 안고 떠났던 소풍을, 그 시절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고 싶다는 아련한 마음을 가을 날 황금 들녘과 함께 추억해본다.
-불국사 :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054-746-9913
-석굴암 : 경북 경주시 진현동 999, 054-746-9933
-안압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054-772-4041
-첨성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포석정 : 경북 경주시 배동 454, 054-745-8484
※ 여행 칼럼니스트 고연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