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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전세 풍속도…‘반쪽 전세’ 증가

미분양·입주 적체에도 전세난 심화 ‘보증부 월세’ 등장

김관식 기자 기자  2010.10.19 11: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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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우리나라 전세제도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최근 전셋값이 오르면서 전세금 일부나 오른 만큼의 전세금을 월세로 지불하는 ‘보증부 월세’ 일명 ‘반전세’가 주택시장에서 차츰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고 있는 전세제도는 임대인과 임차인 즉 개인 대 개인 간의 거래로 오랜 기간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큰 축으로 자리잡아왔다. 전세는 세입자와 임대인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특이한 제도여서 주택 마련 예비자들에겐 여전히 인기가 좋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시장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학생이나 이민자 등의 정착율이 높은 호주의 경우, 월급을 받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마다 급여를 받는다. 때문에 주택비용도 주마다 지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처음 부동산을 임대할 때는 약 4주치의 임대료를 보증금 형식으로 지불하게 되는데 보증금은 임대인이 아닌 담당 부동산을 통해 정부 관리기관에 맡겨진다.
   

계약은 3개월이나 6개월, 1년 등으로 이뤄지며 계약이 만료되면 집안 손상여부 등을 중개업소와 임차인이 이상 유무를 정부에 제출해야 보증금을 받는 구조다. 이때 부동산에 손상이 있을 시 보증금에서 손상규모에 대한 액수를 뺀다. ‘감가상각’ 계산이 철저히 진행되는 셈이다. 

또 임대인의 에이전트격인 중개업소는 일정 수수료를 받고 임대인이 해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임차인과 임대인 개인 간의 거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세와 다른 점은 정부에서 주택 구입이나 임대에 관여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임차인의 보증금을 받고 계약만료 시에 돌려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세제도처럼 전세권 설정 등 임대 부동산에 대한 리스크가 없는 것이 장점이다.

이 같은 주택비용 셈법은 호주뿐 아니라 대다수 국가에서 통용된다. 우리나라에 출장 온 외국인들이 전세 주택을 얻어 지내다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보증금을 돌려받으면서 대개 어리둥절해 하기 일쑤다. 렌트하면서 냈던 금액 전부를 돌려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전세제도에 대해 외국인들은 ‘굿’을 연발한다고 한다.

셈법에 밝은 한국사람들이 단 한 푼의 사용료도 받지 않고 돈을 다 돌려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도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집값은 오른다는 불변의(?)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전세제도가 굳건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조건’에 이상기류가 보이면서 전세제도 자체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빈집 많은데…전세난?

한 부동산정보업체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경기도 내 미분양 아파트 사업장 270곳을 분석한 결과 206곳(76%)이 한 달 동안 집을 한 채도 팔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8월말 기준, 경기도 미분양 아파트는 2만2326가구로 평균 분양가를 고려하면 13조2023억원 규모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에서 미분양이 가장 많은 데다 수도권 미분양 주택의 79%가 집중돼 있기도 하다.

물론 최근 들어 미분양 할인 혜택 등으로 미분양 주택이 감소하고 있지만, 특이한 점은 경기도를 비롯, 수도권 지역에 미분양, 미입주 등 남아도는 아파트가 많은데도 전세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매매수요가 집값하락으로 인해 매매 시기를 늦추고 우선 전세로 머물겠다는 것으로 전세수요가 증가하면서 생겨났다.

보편적으로 이 같은 물량들은 일반매매시장에서 소화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매수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기존 계약자도 부동산 구입을 포기하거나 계약을 하지 않는 가능성이 높아져 세입자도 전세로 머물 수 없고 빈집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전세로 머물다가 재계약을 원하는 세입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집값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재계약을 위해선 오른 만큼의 전셋값을 월세로 지불해야하는 상황이다.

특히 지금처럼 전셋값이 오르면서 앞으로 전세 개념의 주택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즉 전셋값과 매매값의 격차가 좁아지면서 집값에 대한 거품이 빠져 전세를 거치지 않고도 내집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전세의 등장

서울 광진구 자양동 전셋집에 거주하는 장현석(38)씨는 “(전셋집)재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전셋값이 올라 매매가와 큰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며 “이렇게 될 바에는 전셋값에 돈을 더 보태서 집을 사는 게 낮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씨처럼 아예 집을 사는 게 낫다고 마음을 먹을 수도 있지만, 자금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월세까지 부담하는 경우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른바 ‘반쪽 전세’다. 월세제도처럼 일정한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매월 월세를 내는 식이다.

하지만 반전세는 일반적인 월세와 차이가 있다. 대개 오피스텔의 월세 보증금은 500만~1000만원가량이지만 반전세는 보증금 규모가 일반 월세보다는 훨씬 높다. 기존 전세보증금의 70~80%를 보증금으로 두고 나머지를 월세로 돌리는 식이다. 서울 마포구 서강LG 112㎡(34평)의 전세보증금은 2억5000만~2억8000만원이지만, 보증금 2억원에 50만~70만원 월세 물건도 있다. 전세 보증금 상승분이 월세로 바뀌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인근의 마포역 부근 아파트의 경우 1000만~2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100만원이 넘는 전형적인 ‘월세 아파트’는 오래 전부터 거래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일대와 판교신도시 등 최근 전셋값 급등지역에서 반전세 현상이 흔히 나타나고 있는데, 수도권에서 전반적으로 전세값이 뛰고 있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된 세입자가 전세를 따로 구해 나가기보다 재계약을 선호할 것으로 보고 전세를 반전세로 전환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자가 낮은 상황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경기 장기침체로 투자처가 마땅찮은 데다 은행이자까지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수익형부동산에 눈을 돌린다. 집주인이라면 누구나 기존 전세를 월세로 전환시켜 수익을 얻고 싶어 한다.

부동산 경기 호시절에는 전세를 안고 집을 사더라도 집값 상승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선) 돈이 묶이는 전세거래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만 일부 지역의 집값 하락 현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전세가 더 이상 현실적인 재테크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점은 반전세 현상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도 시장에선 전세 필요”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세제도가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우리나라 전세제도는 투자를 위한 것도 있지만 대출 받아서 집을 샀던 사람들이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갚는 등 전세제도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며 “또 최근 집값 하락폭이 그렇게 심한 수준이 아니고 전셋값 상승자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세가 시장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써브 나인성 연구원은 “우리나라 전세제도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권 설정 등기 를 해주냐, 안 해주냐의 문제”라며 “만약 전세제도가 없어진다면 임대인과 세입자들의 입장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