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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네이버의 ‘마적 정신’에 주목한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0.10.15 15: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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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마적(馬賊)이란 무엇인가?

청나라 말부터 러일전쟁, 만주사변, 2차대전까지를 거치는 기간의 혼란한 만주를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는 마적일 것이다. 마적은 만주와 몽골까지의 넓은 지역(滿蒙大陸)을 무대로 했던 호협(豪俠) 집단이다. 약체화되고 부패한 정부를 대신하여, 일정한 지역 안의 주민을 지키는 것을 소임으로 하는 경비집단이다. 따라서 외적에 대한 저항은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는 그 지방의 악덕 관리와 지방 군벌 등의 착취와 약탈 행위로부터 주민을 지키기기도 하는 조직이었다.

물론 이들 중 오히려 힘없는 백성들을 터는, ‘말을 탄 강도집단’이 되기도 해, 선과 악이 혼재된 집단, 군기는 물론 당연히 제대로 들어있지 않고 돈을 밝히는 집단쯤으로 인식돼 있지만, 정작 마적의 본질은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이며 격식의 벽이 없고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믿고 일을 맡긴 주민들을 위해 강한 적에게도 맞서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적의 가장 전형적인 인물로는 ‘장작림(장쭤린)’을 꼽는 이가 적지 않다. 나중에 일본군이 폭사시키는 그 군벌 장작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철도원’ 등으로 유명한 아사다 지로 같은 이는 심지어 장작림과 그를 따르는 마적들을 4권짜리 대하소설(중원의 무지개)로 그려내기도 했다(가진 것 없고 덩치도 작은 고아 소년이 만주, 더 나아가 만리장성 너머 중원까지 ‘굶는 사람이 없는 낙원’으로 만드는 게 꿈인 거대 군벌로 성장하는 과정을 줄거리로 함). 장작림은 부패한 청나라와 싸우고 몽상으로만 가득 찬 중화민국과 싸우며 스스로의 힘으로 맨땅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간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메이파즈(어쩔 수 없다: 沒法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당대의 만주-중국인들, 가난하고 탐관오리에게는 수탈당하며 강도에게, 때로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 탈영병들에게도 양곡을 뺏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되뇌며 살던 당대의 만주-중국 사람들에게 장작림 마적단이 던진 충격은 가히 센세이션을 넘어서서 천지개벽이었을 것이다. 

네이버 10주년, 2010년의 인터넷과 모바일 검색 환경을 바라보며 장작림 마적단을 생각한다.

야후가 인터넷 세상의 거의 유일한 관문(포털)이던 온라인 문화 태동기, 우리나라 검색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 기업’이라는 점과 ‘무료 메일계정’의 한메일(훗날의 다음)이 이후 영역을 점차 넓혀가며 부각되긴 했으나 아직 2% 부족한 느낌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네이버가 당시 주가를 높여가던 전지현을 기용, “다음에 잘 하겠다는 말, 믿지 마”라고 비판하는 네거티브성 광고를 내보냈을 때조차 오히려 재미있다, 통쾌하다는 반응이 많을 정도로 당시 포털 시장은 협소했고 소비자 중심이라고 부르기엔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사이트를 찾아주는 데 강세가 있던 야후의 디렉토리 검색 방식과 달리 ‘수작업 방식’으로 보고 싶은 정보를 창출해 내는 ‘콘텐츠 검색’을 기반으로 한 ‘통합검색’, 서로 소통하는 쌍방향 문화를 저목한 ‘지식인’, 다음 카페를 보완한 ‘카페’, 1인 글쓰기 문화를 선도한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네이버는 항상 어딜 가나 그렇다, 외국도 그렇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안 될 것이다는 ‘어쩔 수 없다’는 편견을 깨며 시장의 저변을 넓혀 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오늘날 세계 검색엔진의 주류인 구글의 크롤링 능력(있는 정보를 찾아서 보여주는 능력)이 한국 시장을 두드리지만, 네이버의 입지는 여전히 탄탄하다.

이는 네이버가 사람들이 찾고 싶어 하고 나누고 싶어하고 알리고 싶어 하는 것들을 제공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기록, 기대치를 높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뛰어난 구글 알로리즘도 극복하기 어려운 방어벽이 마련됐음을 방증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때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 네이버 권력론이라든지, 언론 콘텐츠의 작위적 편집과 이용, 기계적 중립성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인터넷 망명’ 등 이탈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기사 전송 방식을 바꾸고 ‘오픈 캐스트’로 문호를 열어 스스로 ‘가두리양식장’ 같은 고객망을 포기, 권력을 내려놓는 등 질주하는 마상에서 회의를 하듯 빠른 기동과 변화를 멈추지 않아 왔다.

10주년, 업계 1위를 차지한 네이버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이제 모바일 검색 시대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바일 검색을 선보이기 시작했음을 본다. 이와 함께 각종 인문적 서비스에도 역량을 할애하고 있음도 두드러진다.

손으로 쓰는 듯한 글씨체를 제공, 아날로그 감성을 충족하는 ‘글꼴 공개’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찾고 싶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각종 기능을 제공하는 ‘네이버 앱’을 보면서 항상 한 지역의 골목대장이거나 부자이기보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내달리는 마적이고 싶어했던 장작림을 겹쳐 본다.

만몽대륙에는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늘 스스로 확보한 아성을 스스로 부수어온 네이버는 여전히 10년 전의 사내 벤처 정신을 갖고 있는 마적집단에 가깝다.

마적 네이버의 앞날을 주목한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