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검찰이 재계 40위 태광그룹을 향해 서슬 퍼런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서울 서부지검 형사5부는 태광그룹 본사 사옥과 계열사에 수사관 20여명을 급파,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이 잡고 있는 이호진(48)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의혹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 회장이 수십 개 차명계좌를 만들어 2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고, 다른 하나는 미국 유학중인 외아들 현준(16)군에게 주요계열사 지분을 편법으로 증여한 혐의다.
현준군이 그룹 계열사 지분을 처음 사들인 것은 2006년 4월,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당시 현준군은 제3자 배정방식을 통해 티시스(옛 태광시스템즈) 지분 49%를 주당 1만8955원에 사들였다. 티시스는 2004년 이호진 회장이 자본금 5000만원(1만주)으로 세운 전산시스템 위탁운영·관리업체다.
이후 그룹 계열사들은 앞 다퉈 티시스와 공급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2005년 매출 289억원에 불과하던 티시스는 불과 4년 만에 105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매출의 90%(952억원) 이상이 태광 계열사와 맺은 거래였다.
건물관리업체인 티알엠(옛 태광리얼코)도 티시스가 걸어온 길을 답습했다. 현준군은 같은 해 2월 티알엠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지분 49%를 인수, 부친에 이어 이 회사 2대주주가 된다.
◆갑부 미성년, 편법으로 재산증식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
현준군이 가진 태광그룹 알짜계열사 지분은 이뿐만 아니다. 현준군은 한국도서보급을 비롯 동림관광개발, 티브로드홀딩스 등 지분도 각각 49%, 39%, 8%를 보유하고 있다.
이호진-현준 부자를 둘러싼 편법의혹은 이뿐만 아니다. 현준군이 지분매입 때 사용한 자금출처도 수사대상에 올랐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호진 회장과 티시스, 한국도서보급 간 자금거래를 눈여겨보고 있다.
현준군이 티시스 지분을 사들이던 해 1월 이호진 회장은 한국도서보급에서 11억원을, 같은 해 4월 티시스는 18억원을 빌렸다. 티시스는 이 돈으로 유ㆍ무상증자를 거쳐 대한화섬의 주식 1만9000여주를 사들였다.
◆계열사 자산 빼돌리기
특히 한국도서보급이 대한화섬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한국도서보급은 지난달 13일 태광산업이 갖고 있던 대한화섬 지분 16.74%를 150억원에 사들이면서 이 회사 최대주주로 우뚝 섰다.
문제는 태광산업이 이 과정에서 현행 상속·증여세법이 규정한 ‘매각대금의 30%’에 해당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도서보급에 1대주주 자리를 넘겨주면서 태광산업이 받아야 할 경영권 프리미엄은 약 45억원. 이에 따라 이호진 회장에 대한 배임 혐의도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계열사를 상대로 고액의 골프회원권을 판매한 사실도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태광산업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들은 지난 2008년 이호진 회장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동림관광개발이 발행한 골프회원권을 792억원 어치나 샀다.
당시 회원권 평균 매입가격은 22억원. 이는 당시 수도권 유명 골프장 회원권 시세(10억원 안팎)보다 2배나 비싼 가격이었다. 게다가 골프장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서 회원권을 구매해 사실상 골프장 건설자금을 지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자금 수천억 어떻게 조성했나?
▲이호진 회장 집무실이 있는 태광그룹 금융계열 흥국생명 본사 건물 |
그 뒤 태광산업이 지분 약 18%를 자사주로 매입, 이때 현금화한 돈이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인 고려상호저축은행 등에 차명계좌로 관리되고 있다는 게 검찰 쪽 주장이다. 현 주가가치로 환산하면 이는 2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다.
이밖에도 아직 현금화하지 않고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태광산업 주식도 발행주식의 약 14%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말 현재 태광산업 주주명부를 살펴보면 태광산업 전직 임원과 대리점 사장, 직원 명의 주식이 13만6292주(12.24%). 특히 태광산업 본사를 주소로 하는 주주 48명이 158주씩을, 주주 13명이 262주씩을 똑같이 갖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이 회장 특수관계인으로 공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