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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한국증시 110년 그 파동의 역사 <8>-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한국증시 <상>

1914년 12월12일 다우 23.52% 대폭락

임경오 기자 기자  2005.11.19 1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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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우리나라 최초 증권(선물)거래소였던 인천미두취인소와 우리나라 최초 주식시장이었던 경성주식현물취인소(경취)는 당시 세계정세와 증시에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1918년부터 시작된 미두가 폭등은 1차세계대전 전후 반짝 특수에 편승한 주가(미두가) 상승이었고 경취가 10년 불황에서 못벗어나고 사라지게 된 것도 1929년 이후 지속된 세계대공황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잠시 눈을 해외로 돌려 우리나라 증시에 큰 영향을 미쳤던 1차세계대전 전후를 비롯한 세계대공황 이후까지의 역사를 당시 각국의 증시와 관련지어 살펴볼 예정으로 대단히 흥미롭고도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29년부터 일어난 세계대공황은 당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세계2차대전의 먼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789년부터2005년까지 216년간의 미증시 차트. 세계대공황당시 주가가 큰폭 하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당시의 전쟁 역사는 많이 알지만 1차대전 당시 미국 증시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는 그 당시 잘 발달된 증시가 있었다는 것 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따른 미국 등의 증시 동향을 심층적으로 게재하는 것은 국내언론에서는 드문 일로 네티즌 여러분에게 큰 정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20세기 최대 참화중의 하나인 세계 제1차대전(1914.7.28~1918.11.11)은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부터 그 씨앗은 자라나기 시작했다.

사라예보서 울려퍼진 총소리 세계 1차대전 서곡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기마병을 대체할 수 있는 각종 신무기가 잇따라 개발됐고 1900년대 들어와서 각국의 군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어우러지면서 군비경쟁이 가속화했으며 이에 따라 유럽 여러 나라간에는 생존과 팽창을 위한 합종연횡이 숨가쁘게 펼쳐졌다.

20세기초 오스트리아는 헝가리 및 독일과 군사조약을 체결, 삼국동맹을 맺었으며 독일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프랑스 영국 러시아도 삼국협상을 맺으면서 유럽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중 하나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에서 세계 제1차대전의 서곡을 알리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세르비아 청년 두명이 남슬라브민족의 통일을 부르짖으면서 오스트리아 - 헝가리 연합의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디 황태자를 권총으로 사살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사건에 세르비아 정부가 관련됐다면서 7월23일 세르비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붙여 최후통첩을, 황태자 암살 한달 후인 7월28일 결국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세르비아를 침략하는 전쟁의 길을 선택,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간에 전쟁이 벌어지자 세르비아와 군사조약을 맺은 헝가리와 독일도 참전했다.

그런데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같은 ‘유고 슬라비아’ 민족이기 때문에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세르비아간 전쟁에 참전을 선포, 세르비아 진영에 가담했고 당연히 러시아와 삼국협상을 맺은 프랑스 영국도 참전하면서 러시아와 세르비아를 도와주게 됐다.

이후 유럽열강들이 차례차례 이해득실에 따라 포화에 휘말려 들어갔으며 나중엔 독일이 중립국인 미국을 공격, 미국까지 참전하면서 전세계가 전쟁터로 변했다.

1914년 12월12일 다우 매물 홍수로 미 216년 증시 사상 최대폭락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후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자 미국 다우존스는 7월30일 6.91% 급락, 71.42에 장을 마감했으며 다음날인 7월31일부터는 아예 휴장에 들어갔다.

   
 
1914년 세계 1차대전 발발당시 미 다우지수 차트. 3개월이상 휴장후 개장하자마자 단 하루에 전무후무한 갭폭락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9.11테러후 개장된 한국증시는 그날 갭폭락한 모습. 위사진에서 봤듯이 1차대전 발발전 다우가 음봉후 갭폭락한 것을 비롯한 차트 모양과 너무 유사해 역사엔 반복성이 내재돼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휴장사태는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3개월을 넘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세계 제2차대전때도 휴장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을 보면 당시 신병기를 앞세운 대규모 전쟁이 당시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14년 12월12일 미 증시는 다시 개장을 했으나 전쟁이 날로 확대되고 3개월간 자금이 묶였던 투자자들이 일시에 매물을 쏟아내면서 71.42였던 다우존스지수가 54.62P로 급락, 그 날 하루에만 무려 23.52% 떨어지는 사상최대의 대폭락을 기록했다.

국내증시 전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하더라도 15%가 채 안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이날의 폭락이 체감적으론 공포 그자체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들 1987년 10월19일 월요일 다우가 22.6% 떨어져 세계대공황의 시발점이 된 1929년 10월24일(목요일)의 38.33P 13% 폭락을 능가한 사상최대의 폭락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1914년 12월12일의 기록이 진짜 사상최대 폭락인 것으로 이번 취재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물론 1929년 대폭락은 그날 하루에만 이어진게 아니라 그 다음주에도 계속 이어지고 결국 380선이었던 다우지수가 3년후엔 40선까지 내려갔다는 점에서는 역시 전무후무한 기록이지만 단 하루만의 폭락으로는 1914년 12월12일의 기록이 사상최대 폭락인 것으로 이번에 증시110년사 게재과정에서 확인됐다.

‘1987년 블랙먼데이가 최대폭락’은 사실과 달라

증권연구가인 위문복씨는 “1789년이후 미 증시 216년 역사중 하루 하락폭으로는 1914년 12월12일의 하락이 사상최대 폭락이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01년 9.11테러 직후 한국증시는 그 날 종합주가지수가 100P 12% 가량 급락하면서  공포에 질린 장이었음을  상기할 때 다우의 23% 넘는 폭락은 그 당시 객장이 아비규환 그 자체였음은 짐작하고도 남을만 하다.

   
 
1차 세계대전직후 로이터 물가지수 추이. 밀 석유 면등 10여개 품목을 조사해 발표된 로이터 CRB지수가 1915년부터 1920년까지 폭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우존스지수는 1896년에 출범 당시 12종목으로 구성됐는데 이후 20개 종목으로 늘어난 후 다시 30개 종목으로 확대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출범당시 12개 종목중 제너럴 일렉트릭(GE)사가 유일하게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면서 109년의 최장 거래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14년 7월30일 전후의 주가 차트 모습과 9.11테러 전후의 한국증시의 차트 모습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심리적 공황(패닉)상태에 빠져 투매가 일어나 폭락했을 때가 중단기적으로 가장 바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투자자들은 그걸 너무도 쉽게 잊고 투매에 휩쓸려 큰 손실을 본다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 다우지수는 전쟁기간중 부침을 보이다가 1918년 종전후 1919년 중반까지 승전국으로서 특수가 이어져 119.62까지 상승했다.

   
 
 바로 위 CRB지수와 마찬가지로 인천미곡가와 도쿄증시도 1915부터 상승, 1920년까지 급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차대전 종전후 특수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수 있다.
 
승전국이었던 일본증시도 역시 급등했고 이에 따라 일본증시에 큰 영향을 받고 있던 한국의 인천미두취인소(경취는 1920년 출범했으므로 당시엔 없었음)의 미두 선물가 역시 대폭등을 하면서 쌀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후 반짝 특수로 쌀값 폭등 3.1운동 도화선

결국 쌀값 폭등과 조류인플루엔자(본지 10월18일자 ‘조류독감으로 한국서도 14만명 사망!’ 기사 참조)로 인한 14만명 사망이 겹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1919년 3월1일 3.1운동이 일어나게 됐다. 다시 말하면 1차세계대전 종전이 3.1운동의 먼 도화선이 됐다고도 할수 있는 셈이다.

종전후 급락했던 다우존스지수는  1920년대 들어 소비증대로 인한 호황이 찾아오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 1929년 10월23일엔 380선까지 올랐다.

1929년 미국은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 속에서 섬처럼 호황의 절정에 서 있었다. 1927년 호주 동인도 제도 등 주변국의 불경기가 1928년엔 중남미 동유럽 등으로 확대됐으며 1929년 초반엔 유럽 본토에까지 엄습했다.

오직 미국만이 축배를 들고 있었으나 1929년 10월24일 호황은 끝이 났고 그 때부터 대공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료 제공 및 도움말 주신 분 = 증권연구가 위문복 (www.aha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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