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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신간] 십오야월

저자 김도연, 문학동네 刊

프라임경제 기자  2005.11.19 10: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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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김도연 두번째 소설집, ‘십오야월’이 발간됐다.

   
‘십오야월’에서는 꿈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산골 농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큰 줄기를 이루며 표제작 ‘십오야월’을 포함해 총 10편의 중ㆍ단편 소설을 수록했다.

난분분 난분분, 눈발 휘날리는 보름밤의 꿈

그는 강원도 첩첩산중 외딴 시골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여태 노총각인 그의 집은 외양간도 닭장도 텅 비어 있고, 잡종 사냥개만이 유일한 그의 벗이다.

그는 노모를 도와 민박집을 꾸려나가거나 고라니로부터 소중한 당근밭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혹은 면소재지의 작은 도서관을 근거지로 삼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향노루 연구에, 아니 문학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거의 유일한 혈육인 노모는 먹고 사는 일 외에 그의 욕망과 열망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답답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감행한 그에게, 노모는 야밤에 불쑥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 리모컨 사용법을 물어온다. 어쩔 것인가.

그는 다만 늙은 사냥개를 앞에 앉혀놓고 자신이 쓴 시를 절실하게 읽어줄 도리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는 환몽에 빠져들어 있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의 기억이 불쑥 달려들고, 고라니와 산양과 멧돼지와 늙은 사냥개가 능청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뿐인가, 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 귀신들까지 나타나 한판 떠들썩한 난장을 벌인다. 현실과 환상이 서로 섞여들며 서로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누추하고 곤궁한 삶을 감싸안는 환몽과 능청의 소설

김도연의 소설에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를 분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꿈과 현실을 능란하게 교직해 나가는 그 특유의 상상력과 소설 작법은 이미 첫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익히 보아온 바이지만, ‘십오야월’은 그보다 한층 분방하면서도 손쉽게 현실의 장에서 이탈하지 않는 무게감과 함께 자조와 비애의 정서를 감싸 안는 능청과 익살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이 소설집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골 농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몇몇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중편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는 알코올 중독자가 돼 사북으로 돌아온 전직 광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펼치는 ‘사북 해방 작전’은 우울하면서도 시종 어딘가 유쾌한 기운을 잃지 않는다.

해설을 쓴 평론가 김경수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그 밖의 자연의 이질적인 선택항들을 하나의 통사로 엮어내는 김도연 특유의 서술법이 이미 이효석에게서 그 효용이 한껏 발휘된 바 있는 독특한 문체”라고 평했다.

이어 “인물들의 순박성과 그로 인해 발휘되는 순간순간적인 희화적 응전, 그리고 그런 것들로부터 종합되는 피카로적 성격이란 측면에서 김유정의 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적잖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특별한 문학적 자양” 덕분에 김도연은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자신만의 자리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의 문장들이 눈이 되어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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