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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보다 며칠 전인 지난 3일 삼성전자는 애널리스트데이를 열어 사업부분별로 중장기 사업전략을 발표하고 2010년 세계 3대 전자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삼성그룹의 야심찬 사업전망이 단순한 장밋빛 희망으로만 끝나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과 치밀한 전략수립을 통해 현실에서 알찬 열매를 맺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필자는 삼성이 자신의 경영전략과 비전을 선포한 그날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여러모로 현재 삼성그룹이 처해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날 행사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뜨이는 것은 삼성그룹의 총수 이건희 회장의 부재이다.
미 시사주간지 “ 이건희 회장은 Hemit”
일반적으로 기업이 새로운 발전 전략을 공표하는 자리에는 CEO들이 직접 나와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의 양해와 협조를 구한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대중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석상에 잘 나오지 않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 CEO로 유명했다.
한 미국의 시사주간지는 이러한 이건희 회장을 두고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따로 사는 인물을 의미하는 ‘Hemit’이란 표현을 썼다.
삼성쪽에서는 현대의 CEO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이건희 회장의 대중기피현상을 ‘은둔의 제왕’(The king of hermit)이라며 오히려 신비화전략을 펼쳤지만 이 의사 결정 하나하나에 고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CEO 에게 자신의 집에서 파자마를 입고 측근을 통해 회사의 경영전략을 지시하는 이건희식 경영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이날 이건희 회장이 그 자리에 올 수 없었던 이유는 이건희 회장의 대언론기피증이라기 보다는 ‘X파일’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X파일 에버랜드CB 유죄판결로 애널리스트데이 불참
이건희 회장은 지난 9월 폐암 검진과 치료를 명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삼성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의 방미는 X-파일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국정감사의 증인 소환이라는 칼날을 피하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겹쳐졌는데 그것은 지난 10월 4일 이루어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유죄판결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 회장의 피고발인 중의 하나이고 검찰은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과 당시 법인 주주였던 삼성계열사들의 실권의 배후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현재 이건희 회장은 불법적인 정경유착 (X파일), 그리고 아들로의 경영권의 불법 승계(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라는 재벌체제의 구태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있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한 점은 이건희 회장이 과거 유사한 곤경에 직면하였을 때 즐겨 사용했던 전술인 삼성의 우월한 경제력을 근거로 형성된 광범위한 법조, 정치, 관료 인맥을 이용한 로비가 시민들의 강한 분노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로비가 시민들의 강한 분노 일으켜
여기에는 이건희 회장의 고대명예 박사학위 수여 파동, X파일 사건을 기점으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인 ‘삼성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건희 회장이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을 ‘소나비 피하기’ 정도로만 인식하고 대처하려 한다면 이건희 회장이 직면한 어려움은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갈 것이다.
그러나 그 날 행사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이건희 회장의 빈자리를 삼성전자의 능력있는 경영진들-운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등-이 메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날 행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이건희 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이는 삼성그룹이 스스로가 홍보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는 삼성전자의 기업가치가 그동안 삼성그룹이 만들어내고 일부 언론이 앵무새처럼 읊어댄 이건희 회장 개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성취한 기술력과 시장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은 경영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라는 회사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 그것이 도저히 풀릴것처럼 보이지 않는 복잡한 현재의 삼성문제를 해결하는 첫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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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수 팀장 약력
34세,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졸업
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팀장